본문 바로가기

조선은 왜 망했나 부패망국

1905년, 고종의 미신 현혹 실상

1905, 고종의 미신 현혹 실상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5417일에 의정부 참정대신 민영환이 아뢰었다.

 

"무당이나 점쟁이 등의 잡술은 나라에서 철저히 금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요즘 법과 기강이 해이되어 그러한 무리들이 서울과 지방에 출몰하면서 요사스러운 말과 요사스러운 술수로 백성들을 선동하며 심지어는 패거리를 지어 정사를 문란하게 만듭니다. 그들의 소행을 따져보면 실로 매우 한탄스러우니, 속히 법부(法部)와 경무청으로 하여금 일일이 붙잡아 법 조문에 의거하여 죄를 주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러자 고종이 윤허하였다.(고종실록 1905417)

 

그런데 1주일 뒤인 425일에 무당과 점쟁이 등을 엄격히 금하지 않은 경무사 신태휴가 처벌되었다. (고종실록 1905425)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었다.

 

무당과 점쟁이 등의 잡술을 엄격히 금지하는 것에 대한 재가(裁可)를 삼가 받들어, 경무청에 신칙을 여간 엄하게 하지 않았으니 거행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는 입장에서 마땅히 각성해서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인데 여러 날이 지나도 아직 철저히 금지한다는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니, 경무사(警務使) 신태휴를 우선 엄중히 견책하여 그로 하여금 각별히 법과 기강을 세우고 민심을 안정시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러자 고종은 윤허하였다.

 

나라가 이 모양이다. 기강이 서지 않고 실천이 없다.

 

1905년에 황현은 고종의 미신 현혹 실상을 기록했다. 매천야록

나온다.

 

고종의 미신 현혹 실상

 

일본인들이 헌병을 파견하여 경운궁(慶雲宮)의 문을 수비하였다. 이때 요술(妖術)을 가지고 고종을 현혹시키는 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은 혹 구름을 타고 허공을 날아 순식간에 만리 길을 가서 러시아군과 일본군의 진영(陳營)을 굽어본다고도 하고, 혹은 비와 돌을 마음대로 떨어뜨리게 하여, 만일 적들이 국경을 침범할 때는 비와 돌로 그들을 섬별할 곳이라고도 하였다.

 

그들은 요망스럽고 허황된 것이 모두 이따위 것들이었다. 민영환이 참정이 되어서 누차 그들을 엄히 묻기를 간청하였으나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일본인들이 헌병을 파견하여 금지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끝내 금하게 할 수는 없었다.

 

115일에 전 참찬(參贊) 곽종석도 미신타파를 상소했다.

 

화려한 옷과 사치스런 노리개, 기이한 물건을 모두 물리치고 비용을 허비하는 여러 토목 공사나 건축 공사를 없애며 신령과 부처, 무당과 점쟁이를 섬기는 괴상하고 허무맹랑한 짓을 그만두게 해야 합니다.”

 

19051118일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나라가 외교권을 빼앗겼다.

 

121일에 외부대신 서리 협판(協辦) 윤치호가 을사늑약을 맺은 대신들을 처벌하라고 상소하였다.

 

"지난 갑오경장 이후로 자주권과 독립의 기초를 남에게 의지한 적 없이 여유 있게 지켜온 지 이제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정이 잘 다스려지지 않아 하소연할 데 없는 백성들이 모두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외교를 잘못하여 조약을 체결한 나라와 동등한 지위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폐하께서 하찮은 소인들에게 눈이 가리어졌기 때문입니다.

궁실을 꾸미는 데 힘쓰게 되니 토목 공사가 그치지 않았고, 기도하는 일에 미혹되니 무당의 술수가 번성하였습니다.

충실하고 어진 사람들이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니 아첨하는 무리들이 염치없이 조정에 가득 찼고, 상하가 잇속만을 추구하니 가렴주구 하는 무리들이 만족할 줄을 모른 채 고을에 널렸습니다.

 

개인 창고는 차고 넘치는데 국고(國庫)는 고갈되었으며 악화(惡貨)가 함부로 주조되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두 이웃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고 우리나라 물자를 가져가니 온 나라가 입은 피해가 막급합니다.

 

심지어 최근 새 조약(을사늑약을 말함)을 강제로 청한 데 대하여 벼슬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끝끝내 거절하지 않고 머리를 굽실거리며 따랐기 때문에 조정과 재야에 울분이 끓고 상소들을 올려 누누이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로 일치된 충성심과 애국심은 어두운 거리에 빛나는 해나 별과 같고 홍수에 버티는 돌기둥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지난날의 조약을 도로 회수해 없애버릴 방도가 있다면 누가 죽기를 맹세하고 다투어 나아가지 않겠습니까마는, 지금의 내정과 지금의 외교를 보면 어찌 상심해서 통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지금이라도 든든히 가다듬고 실심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종묘사직과 백성들은 필경 오늘날의 위태로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독립의 길은 자강(自强)에 있고 자강의 길은 내정을 닦고 외교를 미덥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의 급선무는 일을 그르친 무리들을 내쫓음으로써 민심을 위로하고 공명정대한 사람들을 조정에 불러들여 빨리 치안을 도모하며, 토목 공사를 정지하고 간사한 무당들을 내쫓으며 궁방(宮房)의 사재 축적을 엄하게 징계하고 궁인(宮人)들의 청탁으로 벼슬길에 나서게 되는 일이 없게 할 것입니다.

 

자강의 방도와 독립의 기초가 여기에 연유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힘쓰고 힘쓰소서."

 

이러자 고종이 비답하였다.

"진달한 내용이 종합적이고 자세하며 시의 적절한 것들이다."

(고종실록 1905121)

 

하지만 고종은 을사오적을 내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영전시켰다. 간사한 무당들을 내쫓으라는 비답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