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36) 고골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승인 2020-04-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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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세 편의 글을 감상해보자. 먼저 '네프스키 거리'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페테르부르크에는 네프스키 거리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이 거리는 이 도시를 위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의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거리가 왜 훌륭하지 않겠는가? 내가 아는 바로 이곳 사람들은 가난한 자든 고위직 관료든 누구나 네프스끼 거리를 다른 어떤 좋은 것과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여자들은 어떤가! 아, 네프스키 거리란 여자들에게는 훨씬 더 유쾌한 존재이다. 그 거리가 즐겁지 않는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고골 지음·조주환 옮김, 뻬쩨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2002, p 227)
네프스키 거리는 밤이 되면 젊은 독신자들로 넘친다. 이 대목에서 삐로고프 중위와 화가 삐스까료프가 등장한다.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은 네프스키 거리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눈에 띈 두 여자, 검은 머리 여자와 금발머리 여자를 본다. 몽상적이고 소심한 화가 삐스까료프는 설레며 검은 머리 여인을 뒤따라 갔는데...
아뿔싸, 아름다운 그녀는 창녀였다. 그러나 화가는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녀를 찾아가 청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큰 소리로 웃어대며 그를 비웃는다. 화가는 절망에 빠져 거리를 헤매다가 며칠간 집에 들어박혔다. 일주일이 지나고 방문이 계속 닫혀 있어서 사람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한편 허영심 많고 속물적인 삐로고프 중위가 따라간 금발미녀는 독일인 유부녀였다.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그녀를 정복할 욕망을 불태운다. 어느 날 그는 남편이 부재중일 때 금발미녀와 춤을 추고 키스를 하려다가 돌아온 남편에게 들켜 실컷 두들겨 맞고 쫓겨난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이 네프스키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키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위 책 p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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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일기'는 정신착란에 빠진 하급관리가 쓴 일기이다. 9급 관리 뽀쁘리시친은 국장의 딸을 사랑하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는 사랑에 미쳐 개의 편지를 훔치게 되고 국장의 딸이 자기를 조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이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서 그는 스페인 왕으로 생각한다. 이때부터 일기의 날짜는 황당한 순서로 진행된다.
“2000년 4월 43일
오늘은 위대한 경사가 있는 날이다. 스페인에 왕이 살아 있었다. 그가 발견되었다. 그가 바로 나다.
며칠도 아니다. 날짜가 없는 날
네프스키 거리를 몰래 걸어가는데 황제 폐하가 지나갔다.
시민들 모두가 모자를 벗었으므로 나도 벗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스폐인 왕이라는 걸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위 책 p 123-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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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상화'는 어느 날 가난한 화가 차르뜨꼬프는 미술상 앞을 지나가다가 낡은 초상화 한 점을 산다. 그것은 광대뼈가 나오고 말라 보이는 노인의 초상화였다. 그날 밤 화가는 초상화 속에서 노인이 걸어나와 돈 꾸러미를 푸는 모습을 지켜보는 꿈을 꾼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이 된다. 그는 우연히 초상화의 액자 속에서 금화를 발견하고, 이를 밑천으로 신문에 광고를 내어 명예와 부를 거머쥔다. 세속적 출세로 삶이 권태로워질 때 그는 친구의 전시회에서 강한 충격을 받는다. 그 친구는 예술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진지하게 창작을 시도하지만 이미 재능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타락의 원인이 초상화 속 노인이 남긴 금화임을 깨닫는다. 그는 미술품을 사서 찢어 버리는 광기를 벌이다가 숨을 거둔다.
한참 후 어느 경매장에서 노인이 그려진 초상화가 다시 등장하고 초상화의 내역이 밝혀진다. 초상화를 그린 이는 당대 최고의 성상(聖像) 화가였고, 초상화 속 인물은 고리대금업자였다. 그림의 내역을 알고 있는 이는 화가의 아들로서, 그는 초상화를 회수하고자 했으나 한눈을 파는 사이에 초상화는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고골은 혼돈과 무질서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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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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