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28) 푸시킨의 벨킨이야기
승인 2020-02-17 1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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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1830년의 푸시킨 삶을 알아보자. 푸시킨은 1830년 9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볼지노에 머물면서 다작(多作)했다. 그가 플레뜨네프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너는 약혼녀와 떨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사앙도 못할 거야. 그리고 시를 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 오랫동안 쓰지 못했던 것들은 볼지노에서 썼어. 오네긴의 마지막 두 장, 8행시로 된 소설(꼴롬나의 작은 집), 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페스트 속의 향연, 돈 주앙 그리고 약 30편의 짧은 시들이야. 이게 전부가 아냐. 다섯 편의 단편 소설(죽은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 이야기)도 썼어.”
볼지노에서 푸시킨은 아래 시처럼 폭풍같은 영감으로 글을 많이 썼다.
“그러나 신의 어휘가
시인의 예민한 귀에 닿기만 하면
그의 영혼 잠에서 깨어난 독수리처럼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네.”
(모출스끼 지음, 이규환 이기주 옮김,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들, 써네스트, 2008, p 51~63)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는 1825년에 살리에르가 죽으면서 자신이 모차르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말을 했다는 잡지와 신문기사, 모차르트의 죽음을 둘러싼 소문들 그리고 살리에르를 찬양한 글들을 읽고 쓴 희곡이다. 금욕적 노력형 음악가 살리에르와 제멋대로인 천재 모차르트를 대비시키면서 두 음악가 모두 파멸을 걷는 모습을 그린다. 이 작품은 림스키코르사고프에 의해 1898년에 오페라로 만들어졌고, 우리에겐 영화 아마데우스(1984년 작품)로 너무나 친숙하다.
'페스트 속의 향연'은 부제가 ‘윌슨의 비극 '페스트의 도시’인데, 콜레라 때문에 모스크바로 돌아갈 수 없었던 푸시킨이 존 윌슨의 '페스트의 도시'(1816년작) 책을 읽고 쓴 희곡이다. 여기에는 페스트 속에서 향연을 즐기는 사람들과 신성모독이라고 중지하라는 사제의 상반된 시각이 잘 나타나 있는데, 주인공 윌싱엄은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죽음과 싸우면서 즐기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 작품은 1900년에 큐이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벨킨 이야기'는 푸슈킨이 발표한 첫 산문 소설인데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푸시킨은 이 단편 즉 '발사 · 눈보라 · 장의사 · 역참지기 · 귀족아가씨-농사꾼 처녀'를 쓴 사람으로서 소박한 시골 지주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을 내세운다.
그러면 하나씩 살펴보자. '발사'는 결투에서 상대방이 자기에게 쏜 총이 빗맞은 다음, 자기는 상대방에게 총을 안 쏜 수수께끼의 장교 실비오 이야기이고, '눈보라'는 나폴레옹 전쟁 시절에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어 낯선 여인 마리아와 가짜 결혼한 젊은 경비병 부르민이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마리아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는 이야기이다.
'장의사'는 하루라도 관을 보지 않는 날이 없는 장의사 아드리안 프로호로프가 꿈에서 자기가 장의한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이고, '역참지기'는 역참에서 며칠간 앓다가 완쾌된 기병 사관을 따라가 버린 두나를 딸로 둔 14등급 역참지기 시메온 빌린의 슬픈 이야기인데, 빌린은 고골의 '외투'의 9등 문관 아카키의 모델이 되었다. '귀족아가씨-농사꾼 처녀'는 농사꾼 처녀 아쿨리나로 행세하면서 집안끼리 앙숙인 이웃 지주 귀족아들 알렉세이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17세의 귀족 아가씨 리자의 유쾌한 사랑 만들기이다.
이렇게 푸시킨은 장교 · 장병 · 하급관리 · 장의사 · 지주 귀족의 딸 등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솔직하게 묘사했는데, 문장은 간결하고 경쾌하다.
한편 1830년 12월 중순에 모스크바로 돌아온 푸시킨은 1831년 2월18일에 어머니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모의 곤차로바와 결혼하였다. 푸시킨은 32세, 곤차로바는 18세였다. 신혼집은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하트로보의 집이었다. 지금은 신혼집 박물관이 되었고 근처에 푸시킨 부부 동상도 있다. 필자도 2007년에 푸시킨 신혼박물관 근처를 가 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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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의 신혼생활은 3개월로 끝났다. 푸시킨 부부는 1831년 5월에 푸시킨이 다닌 귀족학교 리체이가 있는 싸르스코예 셀로의 키타 예바야의 별장에서 지내다가 10월 말 경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했다. 이 때 푸시킨은 외무부 10등 문관(러시아 관직은 1등에서 14등급이다. 14등급이 최하위직)으로 다시 근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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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푸시킨의 달콤한 신혼은 잠시였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내 곤차로바를 둘러싼 희대의 스캔들과 ‘소설 같은 죽음’ 이었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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