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조선시대 최고의 풍류객 백호 임제(1549~1587). 전라도 나주 출신인 임제는 35세 때 평안도 도사로 임명받아 평양으로 가는 길에 명기(名妓) 황진이를 만나고자 송도에 들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임제는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황진이 묘에 들러 관복을 입은 채로 술잔을 올리고 추도시를 읊었다.
양반 신분에 천민인 기생의 무덤 앞에서 예를 갖추었으니 난리가 났다. 조정 신료와 양반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임제는 풍류시인임과 동시에 사회비평가였다. 그는 소설 『원생몽유록(元生夢游錄)』, 『화사(花史)』, 『수성지 愁城誌』 등을 남겼다.
『원생몽유록』은 조선 세조 때 사육신의 비극을 현실–꿈–현실의 형식으로 구성한 소설이다. 원자허가 꿈에서 단종과 사육신을 만난다.
1578년에 지은 『화사(花史)』는 매화, 모란, 부용 나라의 흥망성쇠를 그린 풍자 소설이다. 당시는 동서붕당 시절이었다.
『수성지(愁城誌)』는 혼탁한 사회를 배경으로 풍자의 수법으로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울분을 토로한 소설이다. 천군이 원혼들의 호소를 풀어주지 못하고 무능하게 세월만 보내는 장면은 당대의 정치상황과 비슷했다.
이와 함께 임제는 부패한 조선 사회를 고발하는 『재판받는 쥐(鼠獄說)』도 지었다. 이 소설은 쌀을 지키는 창고신이 곡식을 다 털어먹은 간사한 쥐를 잡아 재판하는 사건을 다룬 우화소설이다.
소설은 늙은 쥐가 나라의 창고 벽을 뚫고 들어가 10년간 곡식을 훔쳐 먹다가 창고신에게 들켜 재판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늙은 쥐는 자기가 창고 벽을 뚫기 시작했을 때 복숭아꽃과 버드나무가 도왔다고 둘러댄다. 창고신은 복숭아꽃과 버드나무를 잡아다가 심문한다. 그러나 이들은 무고하다고 항변한다.
이어서 쥐는 고양이와 개, 족제비와 두더지, 여우와 삵등이 자기를 도왔다고 차례로 진술한다. 창고신은 이들도 잡아다가 심문하였으나 이들 역시 무죄를 주장한다.
간사한 쥐는 이번에는 노루와 토끼, 소와 말, 호랑이와 용 등이 자기를 도왔다고 둘러댄다. 창고신은 이들 짐승도 심문하였지만, 이들도 항변한다.
화가 잔뜩 난 창고신은 다시 쥐를 심문하니, 간사한 쥐는 앞의 동물의 죄상을 일일이 늘어놓더니, 이번에는 달팽이와 개미, 제비와 개구리, 솔개와 올빼미 등이 사주하였다고 둘러댔다. 심지어 하루살이와 잠자리, 파리와 모기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렇게 교활한 쥐가 죄과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갖은 술책을 다해 남에게 책임전가를 하자, 창고신은 쥐를 쇠줄로 결박하여 기둥에 거꾸로 매달은 다음 가혹한 형벌을 내리라고 명령한다.
늙은 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시 한 번 모든 새와 짐승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면서 어떻게 하든지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심지어 간교한 쥐는 모든 것이 상제의 명령을 받들고 한 것이며 자기는 전혀 죄가 없다고 진술한다.
이 말에 창고신은 노하여 “이 늙은 도둑놈이 몇 달을 두고 수많은 새와 짐승들을 끌어대며 온갖 악담을 토하다가 종말에는 외람되게 상제까지 사주자로 지목하였으니 이는 대역부도 죄인”이라면서 상제에게 보고한다.
이에 상제는 “늙은 쥐의 시체를 네거리에다 내버려 그놈의 고깃살을 후비고 씹어서 그들의 울분을 풀게 할지어다. 가두었던 뭇 새와 뭇 짐승들을 모두 석방하고, 역적의 소굴과 족당은 남김없이 소탕하여 다시 이런 씨종자가 퍼지지 못하게 하라”고 창고신에게 지시한다.
이리하여 늙은 쥐는 처형되고, 억울하게 갇혔던 수많은 짐승들은 풀려났다.
임제는 ‘태사씨(太史氏)’의 말을 빌려 논평한다.
태사씨는 말한다. “불은 당장에 꺼버리지 아니하면 번지는 법이요, 옥사는 결단성이 없이 우유부단하면 번거로워지는 법이다. 만일 창고신이 늙은 쥐의 죄상을 밝게 조사하여 재빨리 처리하였더라면 그 화는 반드시 그렇게까지는 범람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 간사하고 흉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이 어찌 창고를 뚫는 쥐뿐이랴? 아 참! 두려운 일이로다”
이렇게 임제는 옥사의 우유부단과 부패한 쥐의 간교함을 날카롭게 질타했다.
간교한 쥐는 1912년에 중국 철학자 이종오가 말한 ‘후흑(厚黑)’이다. 두꺼운 낯가죽과 시커먼 심보를 가진 조조나 원세개와 같다.(야오간밍 지음, 손성하 옮김, 노자강의, 김영사, 2010)
우리 사회엔 후흑(厚黑)들은 없나? 말로는 정의와 공정을 외치면서 행동은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자들은 없나. 그런 자는 살아있는 권력 여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단죄해야 한다. 그래야 부패가 사라진다./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