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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텍대학

분노하라, 강원 도민일보, 김세곤 2013년 06월 14일 금요일

분노하라

    

김세곤 2013년 06월 14일 금요일
             

  
▲ 김세곤

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 학장

‘분노하라’ 책을 읽었다. 이 책은 금년 2월에 95세로 별세한 노전사(老戰士) 스테판 에셀이 프랑스 사회에 보내는 공개유언장이다. 그는 유엔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업에 참여한 반나치 레지스탕스 출신이다.

에셀은 외친다. 자유·평등·박애와 같은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행동하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해치는 불의에 분노하라. 지금은 분노가 필요한 때이다.

사실이지, 인류가 분노하지 않고 그저 순응했다면 지금 같은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갑의 횡포와 을의 눈물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소위 라면 상무의 대한항공 기내에서 스튜어디스 폭행, 빵 회장의 롯데호텔 주차장에서의 지배인 폭행, 롯데백화점 입점업체 판매직원의 자살,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강매요구 폭언, 밀어내기식 영업에 시달린 배상면주가 대리점주의 자살 등 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을의 설움은 오래전부터 있어 온 일이었다. 갑은 법보다도 더 무서운 오래된 관행을 내세워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여 왔고, 약자인 을은 그 관행의 틀을 깨면 갑으로부터 왕따 당하고 보복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아무소리 못하였다.

그런데 갑의 횡포가 도를 넘자 을도 더 이상 참지 못하였다. 을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SNS에서도 을에게 동조하였다. 갑질에 대한 비난이 순식간에 퍼졌다.

사실 갑의 횡포는 너무 지나쳤다. 을에 대한 무례·무시·멸시는 기본이고, 폭언과 폭행 심지어 무리한 요구까지 서슴없이 해댔다.

이런 갑의 횡포를 막는 일을 혹자는 ‘경제민주화’라고 하고 어떤 이는 ‘불공정 행위 뿌리 뽑기’라고 한다. 정치권에서도 을의 눈물 닦아주기가 화두가 되었다.

그러면 노동시장에 있어서 갑을관계는 어떠한가. 사용자의 지휘 하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가 근로자이지만, 사용자인 갑의 횡포는 없는가. 을의 인권은 억압되지 않는가.

몇 주 전에 KBS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이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비정규직 노동자 800만 시대. 이제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되었다. 국내 최초의 자발적 비정규직 미스 김’

이런 멘트로 시작되는 이 드라마는 직장인들에게 인기였다. 누구나 겪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88만원 세대의 아픔, 생리휴가 문제 등은 직장인들의 공통된 고민거리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핫이슈는 비정규직이다. 여기에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내재되어 있다. 비정규직은 동일한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여도 정규직의 63%정도 밖에 임금을 못 받고 있다.

대법원은 정규직은 오른쪽 타이어를 끼고 용역직은 왼쪽 타이어를 끼는 자동차 제조 공정을 직시하여 2년 넘게 근무한 용역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법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연령, 사회적 신분, 학력, 종교, 인종, 출신지역, 혼인여부, 용모 등을 이유로 고용(모집, 채용, 승진, 임금 지급, 정년, 퇴직, 해고 등을 포함한다)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산업현장에는 차별행위가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직장의 신> 드라마에서 보듯이 고과장에게 사직서 받는 것은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이다.

이제 갑은 일시동인(一視同仁, 누구나 차별 없이 대하여야 한다)의 의미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을은 더 이상 참지 않고 분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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