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 1488년에 함안의 조려를 만나다.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1487년 8월에 남효온과 함께 성담수를 10일간 만난 김일손은 10월에 노모 봉양을 위해 진주목학의 교수를 자청하고 경상도로 내려갔다.
1488년에 김일손은 경상도 함안에 사는 생육신 조려(趙旅 1420~1489)를 찾았다. 조려의 나이 69세였다. 조려는 1455년에 세조가 임금이 되자 성균관에 있다가 함안으로 돌아와 서산(西山) 아래에 살았는데, 서산을 후세 사람들이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 1)
조려는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내면서 스스로 어계(漁溪)라 불렀다. 그런데 늘그막에 김일손을 만나니 무척 좋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헤어진 후에 김일손은 소식이 없었다. 조려는 7언 절구 시를 지어 김일손에게 보냈다.
하늘 끝에 한번 가신 임 끝내 아니 오시고
다시는 소식이 없으니 애달파 한들 무엇 하리.
지금은 어계 언덕에 홀로 서서 고기 잡으며
그대를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중매한 이를 원망하네.
一去天涯遂不來 일거천애수불래
更無消息竟何哀 갱무소식경하애
如今獨立漁溪畔 여금독립어계반
不怨伊人却怨媒 불원이인각원매
조려는 김일손을 다시 보고 싶었는데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소개한 사람이 밉다고 했다. 조려의 시를 보자마자 김일손은 황급히 답시를 보냈다.
어계 조선생의 시에 삼가 화답하여 멀리 부치다. (1488년)
숨어 있는 한 떨기 꽃 누굴 향해 피었을까.
봄 숲에 두견새 슬피 울어 창자를 끊는구나.
봄바람에 휩쓸려 꽃잎이 다 떨어진다 해도
단심을 지킬 뿐 벌을 중매하여 시집을 갈까.
幽花一朶向誰開 유화일타향수개
斷腸春林蜀魂哀 2) 단장춘림촉혼애
縱被東風零落盡 종피동풍영낙진
守紅不許嫁蜂媒 수홍불허가봉매
조려는 김일손의 편지를 반갑게 받았으리라. 그리고 김일손이 단종을 위해 한 몫 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조려는 다음해인 1489년에 세상을 떴다.
이렇듯 김일손은 15세인 1478년부터 25세인 1488년까지 단종의 왕위 찬탈한 세조(재위 1455∽1468)를 은둔으로 저항한 생육신 5명을 차례로 만났다. 그것은 역사 순례였고 기억투쟁이었다. 3)
1) 조려도 성담수와 마찬가지로 1458년 봄에 김시습이 주관하는 공주 동학사에 열린 단종 초혼제에 참가했다.
2) 촉혼(蜀魂)은 두견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신하에게 쫓겨난 촉나라 임금 두우가 슬피 울며 죽어서 새가 되었단다. 그래서 촉나라 임금의 혼이 새가 되었다 하여 촉혼이라 한다. 우리에게는 촉혼보다 귀촉도(歸蜀道)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으로 귀촉도(歸蜀道)라 불렀다. 그런데 귀촉도는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어댔는데, 그 피가 떨어져 두견화(杜鵑花)가 되었단다.
3) 이 글은 “이종범, 사림열전 2, 아침이슬, 2008”을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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