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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과 무오사화

김일손, 18세에 남효온과 함께 생육신 원호를 만나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일손, 18세에 남효온과 함께 생육신 원호를 만나다.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탁영선생문집탁영선생연보를 읽는다.

 

1481(성종 12) 18

 

7, 추강 남효온과 함께 용문산을 유람하다.

8, 추강과 함께 원주의 무항 원호 선생을 방문해 사육신의 일을 듣고 <자규사 子規詞>를 주고받다.

 

김일손은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면서 남효온을 만났다. 남효온은 김일손 보다 10살이나 위였는데, 1478년의 소릉 복위소로 유명해진 유생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원주의 원호(元昊)를 배알하러 갔다. 세종 5(1423)에 문과에 급제하고 문종 때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던 원호는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병을 핑계로 고향인 원주에 내려와 은거했다. 1457(세조 3)에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영월 서쪽에 집을 지어 이름을 관란재(觀瀾齋)라 하였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영월 쪽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단종을 사모하였다. 단종이 죽자 영월에 가서 삼년상 복을 입었고, 삼년상을 마친 뒤 고향인 원주에 돌아와 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원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앉을 때 반드시 동쪽을 향해 앉고, 누울 때는 반드시 동쪽으로 머리를 두었는데, 단종의 장릉(莊陵)이 자기 집의 동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1)

 

원호는 남효온과 김일손이 찾아오자 반가웠다. 특히 소릉복위소를 올린 남효온의 기개에 기분이 좋았다.

원호는 무항사(霧巷詞)를 읇었다. 2)

 

저 동쪽을 바라보니

솔잎이 푸르디푸른데

솔잎 따다 부수고 빻아서

주린 배를 채운다.

아득한 저쪽 하늘 바라보니 3)

흙빛 같은 암울함이여 구름이 오색 빛을 가리누나.

, 백이숙제가 아득하여 벗할 수가 없어라.

수양산에서 푸른 풀 뒤적이며 공연히 헛손질하네. 4)

세상이 모두 의리를 잃고 녹봉을 쫓아도

나만이라도 몸을 깨끗이 하고 노닐리라.

 

김일손은 북받쳤다. 무항의 탄세사를 받들다를 올렸다.

 

한강물은 흘러 흘러가고

영월의 산은 푸르고 푸르기도 하건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두견새 울음소리 5)

이 사람의 애간장을 끊어놓네.

서리가 대지를 덮어 울창한 숲 빛깔이 변하고

구름이 하늘을 가리니 훤한 햇빛이 없어지네.

그나마 헌칠하신 분이 여기에 있어 6)

고향 산 남쪽에서 홀로 우뚝 서 있구나.

당신은 이제 떠나 목숨을 버려도 후회하지 않으리니

아아, 나 또한 따르려고 서성입니다.

 

18세의 열혈청년 김일손, 생육신 원호의 뒤를 따르려는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

 

 

 

1) 백호 임제의 원생몽유록에서 두건을 쓴 호남아 남효온을 하늘에 계신 단종과 사육신에게 인도한 선비 원자허(子虛)가 바로 생육신 원호이다.

2) 무항(霧巷)은 원호의 호이다. 이 시는 세상을 한탄하는 탄세사(歎世詞)라고도 한다.

3) 아득한 저쪽은 단종이 계신 곳을 말한다.

4)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가 망하자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주나라의 산에서 고사리를 먹는 일은 어찌된 일인가라는 책망을 듣자 고사리마저 먹지 않고, 굶어 죽은 충신을 말한다.

5) 이 시에도 두견새가 나온다. 두견새는 단종의 상징이다.

6) 원호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