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연산군일기 1498.7.1.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일 을미 2번째 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왕이 사관을 참예시키지 않고 몇몇 대신들과 의논하여 의금부 경력 홍사호 등을 경상도로 보내다
파평 부원군(坡平府院君) 윤필상(尹弼商), 선성 부원군(宣城府院君) 노사신(盧思愼), 우의정(右議政) 한치형(韓致亨), 무령군(武靈君) 유자광(柳子光)이 차비문(差備門)에 나아가서 비사(秘事)를 아뢰기를 청하고, 도승지(都承旨) 신수근(愼守勤)으로 출납을 관장하게 하니 사관(史官)도 참예하지를 못했다. 그러자 검열(檢閱) 이사공(李思恭)이 참예하기를 청하니, 수근은 말하기를 ‘참예하여 들을 필요가 없다.’ 하였다.
이윽고 의금부 경역(義禁府經歷) 홍사호(洪士灝)와 도사(都事) 신극성(愼克成)이 명령을 받들고 경상도(慶尙道)로 달려갔는데, 외인은 무슨 일인지 알지를 못했다.
(해 설)
유자광, 윤필상, 노사신, 한치형이 사관도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연산군을 만났다. 특히 주목할 인물은 유자광이다.
유자광은 이미 남이 옥사의 주동자였다.
연산군을 만나게 한 이는 도승지 신수근이다.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이고 중종의 장인이다.
연산군은 유자광등의 비사를 듣고 의금부 도사를 경상도로 보냈다.
이 일은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왕의 일은 반드시 사관이 참여하여야 하는데, 사관을 참여 안 시킨 것은 신수근의 전횡이다.
(연려실기술의 기록)
○ 의금부 경력 홍사호(洪士灝)와 도사 신극성(愼克成)에게 명하여 곧 함양(咸陽)에 가서 김일손을 잡아오게 하였다. 또 액정서(掖庭署) 하예(下隸) 중에서 말 잘 달리는 자를 시켜 죄인을 잡아오는 걸음이 더디고 빠른 것을 도중에 살펴 빨리 보고하라 하였다. 이때 김일손은 풍병(風病)으로 집에 있다가 잡혀 왔다. 폐주는 수문당(修文堂)에 나와서 국청(鞫廳)을 설치하였는데, 노사신(盧思愼)ㆍ윤필상(尹弼商)ㆍ한치형(韓致亨)ㆍ유자광(柳子光)ㆍ신수근(愼守勤)과 주서(注書) 이희순(李希舜)이 국문에 참여하였다. 《야언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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