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8일 임인 3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지진의 변과 실정에 대하여 홍문관 부제학 이세영 등이 상소하다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이세영(李世英)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화기(和氣)는 덕이 있는 곳에 응하고 궂은 징조는 덕을 잃은 곳에 생기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로 아름다운 기운이 아직 엉겨 있어 음양(陰陽)이 서로 틀리고 천문(天文)이 도수를 잃고 지도(地道)가 편안하지 못하여 서리·우박·번개·천둥의 변이나 돌이 떨어지고 큰물이 지는 등 거의 조용한 해가 없는데, 지금에 또 경상도 17개 고을이 3일 동안 지진(地震)이나 혹은 하루에 4번까지 쳤으니, 변이(變異)가 매우 커서 놀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전인의 기록을 상고하건대, ‘임금이 약하고 신하가 강하거나 포학하여 함부로 죽이면 지진이 있고, 여알(女謁)051)이 용사하면 지진이 있고. 외척(外戚)이 전자(專恣)하고 내시가 권세를 쓰면 지진이 있고, 형(刑)과 벌이 중(中)을 잃으면 지진이 있고, 옥(獄)에 원통한 죄수가 있으면 지진이 있고, 임금이 간하는 말을 듣지 않거나 안으로 여색(女色)에 빠지면 지진이 있고, 외이(外夷)가 침범하여 사방에 병란(兵亂)의 조짐이 있으면 지진이 있다.’ 하였으니, 하늘과 사람의 정을 탐색하고 예와 이제의 논(論)을 참작하오면, 변괴란 헛되이 생기지 않고 반드시 부르는 바가 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총명하고 영의(英毅)하시어 권병(權柄)과 기강(紀綱)을 총람(摠攬)하여 뭇 신하가 승순(承順)하고, 백관(百官)이 직무에 충실하오니, 임금이 약하고 신하가 강하다고 이를 수 없으며, 관인(寬仁)하시고 자서(慈恕)하여 원(元)을 체받아 물(物)을 육성하시고, 논형(論刑)을 흠휼(欽恤)하여 반드시 삼복(三覆)을 내리시니, 포학하여 함부로 죽인다 이를 수 없습니다. 유독 갑자기 승진하고 섞여 진출하여 오래도록 맞지 않는 직위에 있는 것이 어찌 외척이 전자(專恣)하는 사단이 아니겠습니까. 남승(濫陞)과 독상(瀆賞)으로 은택(恩澤)을 남달리 입는 것이 어찌 내시가 권세를 쓰는 사단이 아니겠습니까. 나인(內人)과 척족(戚族)이 궁금(宮禁)을 인연삼아 자기 신역(身役)을 면할 것을 엿보고 있으니, 어찌 여알(女謁)이 용사하는 조짐이 아니옵니까? 부상(富商)은 법에 저촉되도록 분부하여 말감(末減)을 해주시고, 요사한 무당은 법을 무시해도 특별히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시니, 어찌 옥사(獄事)가 정당성을 잃을 조짐이 아니옵니까. 왜적(倭賊)이 몰래 틈을 노리어 그 해(害)가 수신(戍臣)에게 미치고, 야인(野人)이 순종하지 않아 변방 백성을 노략질하니, 이는 외이(外夷)가 변경(邊境)을 침범하려는 조짐이옵니다. 대신(臺臣)이 법을 집행하고 간원(諫垣)에서 논박을 봉해 올리되 아집을 버리는 것을 어렵게 여기시고 남의 의견을 좇는 것을 인색히 하시니, 이는 간언(諫言)을 거부하고 자기 의사대로 하려는 조짐이옵니다.
또 하늘에 순응하는 것은 덕을 닦는 데 있사옵고, 덕을 닦는 것은 학문을 부지런히 하는 데 있사온데,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경연(經筵)에 납시여 여러 신하를 접견하시고 조정에 임하여 시사(視事)하신 날이 대개 셀 수 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연(經筵)이 비록 중하지만 내 몸도 또한 중하다. 지금 만약 억지로 경연에 나갔다가 점점 큰 병을 이루게 되면, 일이 도리어 경연보다 중할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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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사고본】 8책 3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315 면
【분류】정론-정론(政論) / 과학-지학(地學) / 왕실-궁관(宮官) / 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외교-왜(倭) / 외교-야(野) / 인사-관리(管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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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51]여알(女謁) : 대궐 안에서 정사를 어지럽게 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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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9일 계묘 1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도승지 신수근이 홍문관의 상소로 사직을 청하다
도승지 신수근(愼守勤)이 아뢰기를,
"신이 지금 홍문관(弘文館)의 상소를 보온즉, 지금 지진(地震)의 변에 대하여 ‘유독 갑자기 승진하고 섞여 진출하여 맞지도 않는 자리에 오래 있는 것이, 어찌 외척(外戚)이 전자하는 사단이 아니겠습니까.’ 하였으니, 이는 신을 지목하여 말한 것입니다. 청컨대 신의 직책을 파면시켜 주옵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홍문관(弘文館)의 나이 젊은 무리들이 한갓 옛사람들이 한 말만을 보고서 그와 같이 말한 것이다. 전일의 뇌변(雷變)도 역시 재상(宰相)이 정사를 잘못한 소치라고 하였는데, 어찌 그렇겠느냐. 경(卿)은 부디 사양하지 말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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