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과 무오사화 (2) - 1498.7.11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1일 을사 1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김일손의 사초를 들여올 것을 명하니 이극돈 등이 일부를 절취하여 올리다
전교하기를,
"김일손(金馹孫)의 사초(史草)를 모두 대내(大內)로 들여오라."
하매, 실록청당상(實錄廳堂上) 이극돈(李克墩)·유순(柳洵)·윤효손(尹孝孫)·안침(安琛)이 아뢰기를,
"예로부터 사초(史草)는 임금이 스스로 보지 않습니다. 임금이 만약 사초를 보면 후세에 직필(直筆)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즉시 빠짐없이 대내로 들이라."
하였다. 극돈 등이 다시 아뢰기를,
"여러 사관(史官)들이 드린 사초를 신 등이 보지 않는 것이 없고, 일손(馹孫)의 초한 것 역시 모두 알고 있사옵니다. 신 등이 나이가 이미 늙었으므로 벼슬한 이후의 조종조(祖宗朝) 일은 알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일손의 사초가 과연 조종조의 일에 범하여 그른 점이 있다는 것은 신들도 들어 아는 바이므로, 신들이 망령되게 여겨 감히 《실록》에 싣지 않았는데, 지금 들이라고 명령하시니 신 등은 무슨 일을 상고하려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옛 부터 임금은 스스로 사초를 보지 못하지만, 일이 만일 종묘사직에 관계가 있으면 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신 등이 그 상고할 만한 곳을 절취하여 올리겠습니다. 그러면 일을 고열(考閱)할 수 있고 또한 임금은 사초를 보지 않는다는 의(義)에도 합당합니다." 하니, ‘가하다.’고 전교를 내렸다.
극돈 등이 일손의 사초에서 6조목을 절취하여 봉해 올리니, 전교하기를,
"그 종실(宗室) 등에 관해서 쓴 것도 또한 들이라."
하였다.
o 7월11일 <연산군일기>에 비로소 김일손이 등장한다. 연산군은
"김일손(金馹孫)의 사초(史草)를 모두 가지고 오라” 한다. 이극돈 등은
임금은 사초를 보지 못한다 하면서 종묘사직에 관한 일이라면 보고하지 않을 수 없다 하면서 김일손의 사초에서 6조목을 절취해서 올린다.
7.11 일기로 보아 연산군은 김일손을 잡아오라고 했고, 사초를 직접 보고 친국을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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