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의 남도일보 칼럼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오월 광주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오월 광주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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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월에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했다. 수용소 정문에 ‘ARBEIT MACHT FREI(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간판이 걸려있다. ‘가스실로 직행 안한 것을 감사하고 노동하라’는 궤변이었다. 이런 기만에 반항하기라도 하듯 유대인은 ARBEIT의 B자를 뒤집어서 걸었다.
수용소 4블록에서 나치 폴란드 총독 Frank의 글을 읽었다.
유대 민족은 완전히 멸종시켜야 할 인종이다. (Jews are a race that must be totally exterminated)
그랬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인종 청소를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만 100만명을 학살했다. 나치(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는 아리아 민족의 영광을 찾고자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유대인을 절멸시켰다.
불현듯 1979년 부마항쟁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의 말이 떠올랐다. “캄보디아에서는 200만도 더 죽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 그랬다. 1980년 오월 광주에서 군사정권은 총칼로 학생과 시민들을 마구 죽였다. 민주화를 짓밟았다.
#2. 4블록 절멸(extermination)관을 나오면서 입구에 있는 글귀를 다시 보았다.
Those who do 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과거를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 기억하는 일은 잊지 않기 위함이다. 망각은 또 다른 방랑이다.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 기념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7년에 박물관이 되었고,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1945년 1월27일은 해방 60년인 2005년 유엔 총회에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국제추모일’이 되었다.
한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2009년에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1959년에 ‘안네의 일기’ 영화가 상영되었고, TV드라마도 만들어졌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안네의 집’은 방문객이 연간 100만명이 넘는다.
#3. 5·18 민주화운동은 1997년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 ‘5·18 민주화 운동 기록물’ (Human Rights Documentary Heritage 1980 Archives for the May 18th Democratic Uprising against Military Regime, in Gwangju, Republic of Korea : 대한민국 광주에서 군사정권에 맞서서 일어난 1980년 5·18 민주·인권 기록유산)도 2011년에 세계기록유산이 되었고, 국립 5·18 민주묘지와 5·18 기념문화관,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도 세워졌다.
#4.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연간 100개국에서 100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또한 1988년부터 시작한 ‘살아 있는 자들의 행진’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40개국의 수용소 생존자와 유대인 학생들 1만명이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기 위해 아우슈비츠를 찾았다.
역대 교황들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하였다. 프란체스카 교황도 7월에 방문한단다.
#5. 그런데 5·18 민주화 운동은 ‘임을 위한 행진곡’마저 국가 주관 기념식에서 제창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5·18 민주화운동은 폭동이고, 북한 특수군이 남파하여 일으킨 반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지만원과 ‘일베’ 회원들이 그렇다.
이런 역사왜곡과 폄훼가 난무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은 ‘오월 광주’에 갇혀있다. 1년 중 ‘5월’에만, 전국이 아닌 ‘광주’에서만 5·18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6. 그나마 반가운 것은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소설가 한강이 쓴 5·18 소설 ‘소년이 온다’가 영어·네델란드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고 있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전 세계에 최초로 알린 고(故) 힌츠페터 취재기가 영화 ‘택시운전사’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다.
이제 5·18 민주화 운동은 광주를 넘어 전국으로, 세계로 나가야 한다. 인류 보편의 5·18로 승화시켜야 한다. 광주에만 갇히면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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