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왈리 (何必曰利)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
하필왈리(何必曰利, 하필이면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맹자> 책
첫머리 나오는 말이다.
맹자가 양혜왕을 접견하였다. 왕이 이렇게 말했다.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이렇게 오셨으니 장차 내 나라에 무슨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何必曰利) 단지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까?’라고 하시면, 대부(大夫)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가문을 이롭게 할까?’라고 하고,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하는 것이 내 몸에 이로울까?’라고 할 것입니다.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서로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하니,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맹자(BC 372-289)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사람이다. 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중국 천하가 전쟁에 내몰리는 어지러운 시대였다.
양혜왕(BC 339-319)은 맹자로부터 부국강병의 계책을 얻고자 했다. 그런데 맹자는 이(利)의 폐해를 설파하면서 인과 의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일침을 놓았다. 누구든지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하는 패도정치 대신 군주가 백성과 함께 즐기는 왕도정치를 주문하였다.
이(利)는 벼를 뜻하는 화(禾)와 칼을 뜻하는 도(刀)가 합해진 글자다. 낫으로 벼를 베어 가거나 뺏어간다는 의미이다.
의(義)는 양(羊)을 칼(戈)로 자르는 것 즉 양고기를 썰어 골고루 나누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이(利)는 사익이고 의(義)는 공익이다. 그런데 사리사욕이야 말로 난(亂)의 시작이다. 사마천(BC 145-86)은 <사기> ‘맹자 · 순경열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맹자>책을 읽다가 양혜왕이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겠습니까? 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읽던 책을 덮고, ’아, 이(利)는 진실로 난(亂)의 시작이로구나.’라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가 이(利)에 대하여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난(亂)의 근원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利)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라고 했던 것이다. 천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利)를 좋아하는 데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아울러 공자는 ‘이익을 보면 의리에 맞는 지 생각하고(見利思義),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라(見危授命)’고 하였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면 공의(公義)의 길은 멀고 사리(私利)의 길은 가깝다.
19세기 조선을 보자. 이 시기는 세도정치 즉 권력의 사유화가 극심하였다. 매관매직이 성행하였고, 고부군수 조병갑 같은 탐관오리들이 들끓었다.
1894년 1월에 고부농민봉기가 일어났고,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민비는 청나라에 진압을 요청하였다. 청군이 조선에 들어오자 일본군도 들어왔고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청나라는 패배했다.
근대화의 상징 북양함대에는 서태후가 북경 이화원을 조성하는데 해군 예산을 다 써서 포탄이 단 세발 있었다고 한다. (위키 백과)
1905년에 조선은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겼어도 이완용 등 을사오적은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부귀영화를 보장받았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들은 오히려 잘 살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친일청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총리 하신 분이 부패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고, 국회의원들도 비리로 구속되었다. 거의 매일 각종 비리가 터지고 있다.
심지어 표창까지 받은 장군과 청렴 최우수 공기업도 부패에 연루되는 현실이다.
현역 해군 준장이 해외 파병부대장(대령)시절에 장병급식비 7천 만 원을 빼돌려 진급 로비하였다가 긴급 체포되었다. 그는 소말리아 해적을 진압하여 표창까지 받은 군인이었다.(동아일보 2015.10.22.)
실망스럽게도 2012년부터 3년간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평가에서 1위를 한 공기업이 2008년부터 7년 간 20억 원의 허위출장비를 조직적으로 조성하여 검찰 조사를 받았고, 대표가 사퇴하고 직원들이 처벌되었다. (매일경제 2015.7.14.)
한마디로 상당수 공직자들은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을 사적으로 오 · 남용하고 있다. ‘이(利)를 얻으려면 칼날을 각오하라’는 이(利)의 또 다른 뜻을 망각하고 있다.
사(私)는 마음을 파먹는 좀도둑이고 모든 악의 근본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파멸시키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모두 ‘사(私)’라는 한 글자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568년에 퇴계 이황이 선조 임금에게 올린 위 경고 글은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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