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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칼럼

퇴계 이황의 공직관,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백리 퇴계 이황의 공직관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siminsori@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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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23  15: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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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동방의 주자, 조선 성리학의 거두(巨頭) 퇴계 이황(1501-1570)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1천 원짜리 지폐에 나오는 인물이다. 지폐 앞면에는 이황의 초상화가, 뒷면에는 도산서당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가 청백리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1551년(명종 6)에 염근리로 뽑혔다.

이황은 항상 물러나고자 하였다. 그의 호 퇴계(退溪)가 이를 말해준다. 이황은 1545년 을사사화 후 병약(病弱)을 구실삼아 모든 관직을 사퇴하였다. 1546년에 그는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 안동시 도산면 토계동)의 바위 위에 양진암(養眞庵)을 짓고 독서에 열중하였다. 이때 실개천 토계의 토(兎)자를 퇴(退)로 고치고, 자신의 호(號)로 삼았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의 퇴계 종택 앞에는 ‘퇴계(退溪)’ 시비가 세워져 있다.


몸이 벼슬에서 물러나니 어리석은 내 분수에 편안한데
학문은 퇴보하니 늘그막이 걱정스럽네.
이 시냇가 곁에 비로소 거처를 정하니
흐르는 물 굽어보며 나날이 반성하네.


그런데 명종임금은 그에게 벼슬길에 나설 것을 여러 번 종용하였다. 퇴계는 사양하면서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 다섯 가지를 조목조목 들었다.

어리석음을 숨기면서 벼슬을 도둑질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병으로 폐인이 된 자가 마땅하겠습니까.
헛된 명성으로 세상을 속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허물인 줄 알면서도 벼슬에 나아가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직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물러나지 않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1567년에 명종이 승하하자, 15세의 선조(1552-1608)가 즉위하였다. 선조는 사림들을 등용하고 퇴계를 다시 불렀다. 퇴계는 몇 번 사양하다가 별수 없이 1568년 7월에 서울로 들어갔다.

퇴계는 경연에서 강의를 하고 8월7일에 제왕의 길인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를 올렸다.

이어서 이황은 경연에서 선조에게 ‘사사로움’을 경계하라고 글을 올렸다.
사(私)는 마음을 파먹는 좀도둑이고 모든 악의 근본입니다. 옛날부터 나라가 잘 다스려진 날은 항상 적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파멸시키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모두 임금이 ‘사(私)’라는 한 글자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성인(成人)의 경지에 이르러서도 혹시나 편벽된 사(私)가 있을까 두려워하여 항상 조심하며 경계하거늘, 하물며 성인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성인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고, 광인이라도 충분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 하였습니다.

사리사욕을 경계하라는 퇴계의 말씀.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들이라면 한번 쯤 되새겨 볼 경구이다. 지금 정치인 · 고위공직자들은 탐욕과 부패가 지나치다. 무소불위로 취업청탁을 하여 ‘현대판 음서제’까지 등장하였다. 좌절한 ‘7포세대’들은 꿈도 희망도 포기하고 ‘헬조선’을 외치고 있다.

한편 1568년 12월초에 퇴계는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올렸다. 퇴계는 선조가 속히 성군이 되려면 성리학에 대한 빠른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림 10장으로 성리학을 설명했다.

이윽고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퇴계는 안동으로 물러나고자 하였다. 마침내 퇴계는 1569년 3월4일 밤에 대궐에 들어가서 낙향을 허락 받았다. 이때 퇴계는 선조에게 위태로움을 경계하라고 아뢰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태평한 세상을 걱정하고 밝은 임금을 위태로이 여긴다.’하였사옵니다.
지금 세상도 비록 태평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남북에 모두 분쟁의 조짐이 있고, 백성들은 살기에 쪼들리며 나라의 창고는 텅 비었사오니, 갑자기 사변이라도 생기면 토붕와해(土崩瓦解 흙더미가 무너지고 기와가 깨짐)의 형세가 없지 않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없사옵니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에게 딱 들어맞는 충고이다. 지나친 비관은 금물이지만 지나친 낙관은 더 위험하다. 현실을 직시하고, 냉정한 진단과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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