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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칼럼

청렴과 팔마비 , 김세곤 칼럼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칼럼-청렴과 팔마비

오치남 기자  |  ocn@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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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6  17: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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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과 팔마비

전남 순천시 행동우체국 바로 옆에 팔마비(八馬碑)가 있다. 비의 앞면은 팔마비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 글씨는 마모가 되어 알아 볼 수가 없다. 비 앞에는 ‘팔마비’, ‘중건 팔마비 음기’ 표석이 있다.
‘팔마비’는 고려 충렬왕 때 승평부사(昇平府使)를 지낸 최석(崔碩)의 덕을 칭송하기 위한 선정비(善政碑)이자 정덕비(貞德碑)이다. 이 비를 세우게 된 배경은 ‘고려사절요’와 ‘신중동국여지승람’에 자세히 나와 있다.

충렬왕 7년(1281년) 12월에 최석이 비서랑으로 발령이 났다. 승평부에서는 옛날 풍속이 읍의 수령이 발령이 날 때마다 반드시 말을 주었는데, 부사(府使)는 8필, 부사(副使)는 7필, 법조(法曹)는 6필씩 마음대로 골라가게 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관례대로 말을 가지고 와서 최석에게 고르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그는 웃으면서 “말이 개경까지 갈 수만 있으면 되지 골라서 무엇 하겠느냐”고 말하였다.

이후 최석은 개경 집에 와서 순천으로 말을 돌려보냈는데 아전이 받지 않았다. 최석이 말하기를, “내가 너의 고을 원님으로 갔다가, 암말이 낳은 새끼를 지금 데리고 있으니 이것은 나의 욕심이었다. 네가 받지 않는 것은 내가 겉으로만 사양하는 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하고 그 망아지까지 9마리를 돌려주었다. 이후 헌마(獻馬) 폐습이 없어졌다.

충렬왕 34년(1308년)에 순천 고을 사람들은 최석의 청렴한 뜻을 기리고자 팔마비를 세웠다. 공민왕 14년(1365년)에는 승평부사 최원우가 고쳐 세웠고, 1597년 정유재란 때 불 타 없어진 것을 순천부사 이수광(1563∼1628)이 광해군 9년(1617년)에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편 ‘팔마비’ 옆에는 ‘중건 팔마비 음기(陰記)’가 있다. ‘팔마비를 다시 세우면서 비석 뒷면에 새긴 글’이라는 뜻인데 이수광이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芝峰類說)’과 순천부 읍지 ‘승평지 (昇平誌)’를 지은 이수광은 팔마비를 다시 세운 내역을 설명하면서, 고려 공민왕 때 승평부사 최원우의 시를 소개하고 차운시를 지었다.

먼저 최원우의 시이다.
‘승평고을에 오고 가는 계절이 바뀌어
보내고 맞을 때 마다 민폐 끼친 것이 부끄럽구나.
후세에 전할 만한 덕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최군팔마비를 다시 일으켜 세웠노라.’

다음은 이수광의 차운시이다.
‘예로부터 산천이 얼마나 바뀌었던가.
비 碑가 터가 없어져 매몰된 지 오래네.
성명을 다시 돌에 새길 필요는 없으니
좋은 일은 서로 전해 입이 곧 비석이기 때문이라오.’

이 두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최석 팔마비’는 ‘팔마비’가 되었다. ‘팔마비’라고 새겨도 세상 사람들이 최석의 청렴을 다 알 것이니 구태여 이름을 돌에 새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팔마는 청렴의 상징이다. 순천에는 팔마로, 팔마고등학교, 팔마체육관 등 팔마라는 지명과 학교, 건물이 유독 많다.

 말(馬)에 관하여 한 가지 더 이야기하면 조선 중종시절 청백리 송흠은 삼마태수(三馬太守)라 불렸다. 지방관이 부임할 때는 전임 고을에서 말 일곱 마리를 받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는 세 마리의 말만 받았다. 본인, 어머니, 아내가 탈 말이었다.

그러한 송흠도 관직생활 초기에는 역마를 개인 용도로 썼다하여 파직당하기도 하였다. 여름휴가 중에 역마를 타고 선배 최부의 집에 간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송흠의 호는 지지당(知止堂)이다. 지지(知止)는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데 ‘멈추는 것을 안다’는 의미이다. 그의 호처럼 그는 욕망을 자제하면서 살았다.

지금 대한민국 지도층들은 총체적으로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 뻔뻔하고 부끄러움이 없다. 중진 국회의원들이 특수활동비를 개인 쌈짓돈으로 쓰는가 하면, 공군참모총장은 관용차를 자가용처럼 이용하고 부인은 운전병에게 딸의 집 커튼 다는 일을 시키는 등 공(公)과 사(私)도 구분 못하고 있다. 참 어이가 없다. ‘팔마비’라도 한 번 보면 정신을 조금 차리려나….
<호남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