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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의 후손들

남곤의 김일손에 대한 만시 -해동야언에서,,,

○ 김계운(金季雲)은 실로 세상에 드문 선비다. 상서롭지 못한 세상을 만나서 화(禍)를 입고 죽었다. 다만 그 화란의 시말과 그 죽은 뒤에 욕을 다 씻지 못한 일을 후생(後生)이 상세히 알 수가 없다. 남지정(南止亭 남곤)이 그 묘를 옮길 때의 만시(挽詩)에 자세히 실렸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귀신은 아득하고 어두우며 / 鬼神茫昧然
천도는 진실로 알기 어려워라 / 天道諒難知
좋아함과 미워함이 사람과 달라서 / 好惡與人異
화와 복을 항상 어긋나게 베풀도다 / 禍福恒舛施
유구한 이 우주에 / 悠悠此宇宙
수명의 길고 짧음이 다같이 없어짐이 슬프도다 / 脩短同蔑咨
어찌 알랴. 저승의 낙이 / 焉知髑髏樂
이승의 제왕과도 바꾸지 않을 것을 / 不易南面治
달관자는 한번 웃음에 부치겠지 / 達觀付一笑
아득히 떠 있는 구름같이 / 浮雲於渺瀰
오직 슬픈 것은 세상에 이름을 드날릴 사람은 / 獨憐名世人
그 나타남이 매양 늦어져 / 其出每遲遲
겨우 수백년 만에야 / 契闊數百年
한번 보는데 / 乃得一見之
나타났어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 見之又不遂
지극히 잘 다스려진 세상을 어찌 기약할 수 있으리 / 至治寧有期
내가 얼마나 다행인가 / 吾生亦何幸
그대와 때를 같이하여 세상에 태어났으니 / 得與君竝時
한 나라 서경의 문장이오 / 文章漢西京
송 나라 풍희의 인물일세 / 人物宋豐熙
크게 탄식하고 통곡하면서도 / 太息又痛哭
인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행하였네 / 當仁輒敢爲
어찌 알았으리 강관의 무리가 / 寧知絳灌屬
이를 갈며 곁에서 엿보아서 / 切齒從傍窺
묵직한 낭두목(머리를 씌우는 참혹한 형틀)으로 / 傫然囊頭木
갑자기 동시에서 죽임을 당할 줄을 / 遽及東市夷
만사가 없는 것이 무엇인가 / 萬事何所無
동해가 넓어서 가이 없도다 / 東海浩無涯
세상이 평정되고 법이 풀려서 / 世平法又弛
선과 악이 절로 가려졌는데 / 善惡自分歧
어찌하여 벗지 못할 억울함을 / 如何着甕寃
아직까지 펴지 못하였는고 / 尙未大敷披
춘추에 휘하는 전례를 일으켜서 / 春秋起諱例
정공과 애공에게 은미한 말이 많았도다 / 定哀多微辭
성인은 하늘과 같았으니 / 聖人與天同
후세에서 감히 따를 것이 아니요 / 後世非敢追
붓을 잡고 들은 것을 씀은 / 執筆書所聞
사가의 떳떳한 규법인데 / 史家之常規
들은 바가 옳고 그름 있으면 / 所聞有正謬
이는 곧 일가의 사견이로다 / 乃是一家私
사국에서 스스로 편찬함이 있으니 / 編摩自有局
거짓을 깎음은 마땅한 바인데 / 削僞乃其宜
오직 배 속에 칼이 있어서 / 只是腹中劍
억지로 털 밑의 흠을 찾도다 / 強覓毛底疵
어찌 원위의 사람이 / 豈比元魏人
장도규의 악을 나열한 것에 비교하랴 / 列惡張道逵
담당한 관원이 삼가지 못함이 있으면 / 當官有不謹
그 죄는 진실로 태형에 마땅하고 / 厥罪固當笞
어질고 유능한 이에게 또 죄를 감하는 것은 / 賢能又末減
팔의에 법받을 바가 있는데 / 八議在所師
이 말을 가지고 / 無人持此語
임금의 의심을 풀어줄 이가 없었도다 / 一決九重疑
세성(목성으로 약 12년을 주기로 운행함)이 일주하려 하니 / 歲星行欲周
길이 식자의 슬픔을 맺었도다 / 永結識者悲
비탈진 성 동쪽 흙에 / 坡陀城東土
초초하게 시체가 겨우 덮여 있어 / 草草難掩屍
사랑하는 아들과 조카가 / 情鍾有子姪
터를 잡아 옮기기를 도모했도다 / 卜兆謀遷移.
그대는 지금 하늘 위에 있어서 / 君今九天上
인간의 사는 모습을 내려다볼 걸세 / 俯視息相吹
솔개가 뜯는 것과 개미가 파먹는 것도 이미 가리지 않았는데 / 鳶蟻旣不擇
하물며 여기와 저기를 따지겠는가 / 況問彼與玆
산 사람 스스로 구구하게 / 人間自區區
세시의 제사에 편하게 하기 위함이로다 / 爲便歲時祠
처량하도다. 목천현에는 / 凄凉木川縣
중간에 꼬불꼬불한 산이 있으니 / 中有山逶迤
뒷날 도지를 편찬할 때에는 / 他年纂圖誌
묘를 마땅히 기록하고 빠뜨리지 않을 것이로다 / 錄墓當不遺

하였다.
끝 글귀는 대개 김계운의 묘를 마땅히 도지에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뒤에 《속여지승람(續輿地勝覽)》을 편찬할 때 낭관(朗官)들이 김계운의 묘를 기록해 올렸는데, 당상관(堂上官) 한 사람이 말하기를, “벼슬은 재상이 아니며, 또 행실을 삼가지 못했다.” 하고 드디어 지워버렸으니 이것이 어찌 성세(盛世)의 공정을 다한 논의인가. 식자들은 김계운에 대하여 한스럽게 여겼다. 《패관잡기》
○ 권경유(權景裕)의 자는 문요(文饒)인데, 성품이 맑고 곧아 속된 선비와는 접촉하지 아니하고, 강직하여 간신(諫臣)의 풍도(風度)가 있었다. 교리로 있다가 제천 현감(堤川縣監)을 자청하니, 행정이 물처럼 맑아 백성들은 사랑하고 아전들은 두려워하였다. 사관(史官)이 되었을 때에 점필재(佔畢齋)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편찬하였더니 재상 유자광(柳子光)과 이극돈(李克墩)이 연산군에게 아뢰어 내정(內庭)에서 국문하였는데, 공초(供招)가 사실이 아니자, 붓을 던지고 소리를 높이며 꼿꼿하게 굽히지 않고 조용히 죽음에 나아갔다. 《사우언행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