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도문화의 재 발견

한일 강제병합 100년 그리고 매천 황현

 

 

 1월1일 광주일보에 쓴 칼럼을 다시 읽다.

 

 금년도 8개월이 갔다. 남도 역사인물에 대한 재조명을 내가 얼마나 하고 있는 지

 평가하여 본다.  올해 8월은 특별한 달인데 나는 어느 글도 쓰지 않고 지냈다.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연재에 매달리고, <호남 정신의 뿌리를 찾아서-의의길을 가다> 책 내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하였다. 누구인가  <한일 강제병합 100년과 호남 사람들>을 재조명하여 주기를 바랬는 데,  그런 글이나 방송은  매스컴에서 보기 어렵다.

 

다음주에는 구례 매천사라도 다녀와야 겠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선비 매천 황현 선생이 아편을 드시고 돌아가신 날이 9월5일이다.  그 분에 대한 글이라도 한 편 신문에 써야 겠다. 그것이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 생각하면서. 

 

 김세곤 삼가   국치일에 ...

 

 

[남도의 재발견] 2010년과 남도역사인물


---------------------------------------------------------------------------2010년 01월 01일(금) 

 

 

10월 26일은 어떤 날인가?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3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의사 안중근이 국권 찬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에서 6발의 총알로 저격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2009년에는 뮤지컬 ‘영웅’이 공연되는 등 안중근을 기리는 많은 행사가 있었다.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2010년은 남도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새해에 기억해야 할 남도역사인물은 누구인가?


올해는 5·18민주화운동 30년이 되는 해이다. 5·18민주화운동 하면 생각나는 이가 윤상원이다. 그는 시민군 대변인으로서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지키다가 죽었다. 또한 그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82년에 5·18 묘역에서 치러진 들풀야학 동지 박기순과의 영혼결혼식 때 부른 진혼가가 이 노래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2010년은 한일병합 100년이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되는 치욕을 맞는다. 며칠 뒤 구례군 광의면에 사는 한 선비가 절명시 4수를 쓰고 자결하였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를 사죄하기라도 하듯이.


새와 짐승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이 강산 망하고 말았구나/등불 아래 책을 덮고 옛일을 생각하니/글 배운 사람 구실 하기 참으로 어렵구나.


그가 바로 조선의 마지막 선비 매천 황현(1855-1910)이다. 그는 ‘매천야록’을 쓴 역사가이고, 의기 논개, 충정공 민영환, 한말 의병장 고광순의 충절을 읊은 시인이었다.


국치(國恥)로 황현이 목숨을 끊은 지 몇 달 뒤, 영광군에서 한 사람이 태어났다. 그는 유난히 전통문화에 심취하여 문화동호인 활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1년 반의 옥중 생활동안 여유당전서 등 동양사상서를 독파하였다. 해방 이후 그는 다산 정약용 연구의 태두가 되었다. 그가 한국철학의 선구자 현암 이을호(1910∼1998)이다.


그의 호남학에 대한 열정, 호남 문화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퇴직 후에도 국립광주박물관장, 다산학연구원장을 하면서 호남학 정립에 앞장섰다. 그가 남긴 ‘이을호 전집’ 아홉 권은 지금도 호남학의 바이블이다. 그는 생전에 호남학 연구재단을 못 만든 것을 너무나 아쉬워하였다 한다. 그런데 호남학 연구재단 설립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경북은 한국국학진흥원을 안동에 설립하여 영남학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는데 비하여, 남도는 재단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몇억 원을 마련하지 못하여 허덕이고 있다.



다시 역사의 시계를 돌려 500년 전으로 돌아가자. 1510년에 장성에서 한 선비가 태어났다. 그는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겪으면서 의로운 길을 가기 위해 자연에 묻혀 살며 후학을 키웠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절로/산 절로 물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아마도 절로 생긴 인생이라 절로 절로 늙어가리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은일의 선비로 부른 이 선비는 하서 김인후(1510∼1560)이다. 그는 도학과 문장과 절의 세 가지를 모두 갖춘 맑은 물에 떠 있는 부용꽃이었다. 그리고 문묘에 배향된 유일한 호남의 선비이기도 하다.


2001년 퇴계 이황(1501∼1570)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안동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연이어졌다. 퇴계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퇴계에 버금가는 호남의 선비 김인후. 그의 탄생 500주년 행사가 어떻게 치러질지 궁금하다. 추모 행사야 하겠지만 매스컴과 대중들이 얼마나 호응할까?


2010년은 남도 역사 문화에 있어 민주화와 인권, 한일 관계, 호남정신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해이다. 이번 주말에는 남도인물 흔적 찾기를 하련다. 광주시 광산구에 있는 윤상원 생가를 들러보고, 구례 매천사, 장성 필암서원도 다시 가보련다.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