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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김인후를 기리면서

하서 선생 묘소를 찾아서

# 6 하서 선생 묘소 ,


     난산비를 보고  다시 맥동마을로 가서 왼쪽으로 가면 길 가에 비가 두 개 있다. 여기가 하서 집안의 묘소이다.



    장면 1  하서 김인후 신도비.


  하서 김인후 신도비가 묘역 앞에 놓여 있다.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 비문은 한문이라서 잘 볼 수가 없다.  신도비 옆에  큰 비로 비를 다시 세웠는데 읽어 보니 신도비를 다시  한문으로 적은 것이다. 그런데 모두 한문이라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한글로 번역된 안내판이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니면 장성군청 홈페이지에 한글 안내문을 소개하면 좋겠다. 


  장면 2  하서의 묘, 부인 여흥윤씨 묘와 합장,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줄곧 올라가면  묘와 비, 문인석들이 있다. 이곳이 바로 문정공 하서 김인후 묘이다. 부인 여흥 윤씨와 합장되어 있다. 하서 선생은 죽어서도 학이 되고 싶어 했다. 그의 시에 ‘화표학’이라는 시가 있는 데, 하서에 관한 책을 쓴 백승종 교수는  이 시를  그의 심리적 자서전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부인 여흥윤씨는 창평 출신으로  둘째 딸이다. 큰 딸은 김약묵의 부인이며, 하서와 김약묵은 동시에 대과에 급제하여 큰 잔치를 벌이었다고 한다. 하서 처가는 아들이 없어서 하서가 장모를 모시고 살았던 것같다. 하서가 장모가 별세할 때  쓴 만시도 있다.


  장면 3   하서 부모 묘


    하서 선생의 묘위에는 두개의 묘가 있다. 그 오른쪽이 하서 부모의 묘이고 왼쪽이 하서 증손자 증손부의 묘이다. 하서의 부친은 의릉참봉 령이고 어머니는 옥천 조씨이다. 그리고 외가는 전북 순창이다. 하서 증손자 형복은 둘째 아들 종호의 큰 아들인 남중의 큰 아들이다. 남중은 4형제를 두었는데 큰 아들이 형복이다.  

 


 

  장면 4   둘째 아들 종호 묘와 며느리 기씨의 묘.


        하서 선생 묘를 내려오면서 보면 중간쯤에 묘가 두개 있다.


  이곳에 하서의 둘째 아들 종호와 그의 며느리 기씨의 묘가 있다. 하서는 아들을 둘 두었는데 큰 아들이 종룡이고 둘째 아들이 종호이다.종룡은 아들로 종충을 두었고  종충은 아들을 두지 못하여 절손이 되었다. 그래서 종호 집안이 하서의 가계를 이어가고 있다.

종호의 아들 중에 남중은  고봉 기대승의 딸과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기씨 부인은 정유재란 때 화를 입고 왜적으로부터 팔뚝이 잘린 채 물에 빠져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 팔뚝만 묻었다 하여 일비장이라 부르고 있다. 이 비가 바로 일비장이다. 한편 기씨 부인은 중총(큰 아들 종룡의 아들)의 부인 박씨와 함께 열녀로 추앙 받았고 마을 입구에 열녀려 烈女閭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