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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의 미술 기행

라틴 화첩기행 23

  • [김병종의 라틴 화첩기행] 그러니까… 그의 시가 나를 찾아왔어
  • [23] 칠레 - 詩人 파블로 네루다의 집

    눈에는 얼음 품고 가슴엔 불을 품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좌파도 우파도 모두가 사랑했던 시인.
    안데스의 얼음덩이와, 그의 가슴 속 활화산이 만났을 때
    詩語가 뚝뚝 떨어져 내렸겠지…. 그가 잠든 무덤마저도 아름답다.
  • 김병종 화가
    입력 : 2007.04.22 23:57 / 수정 : 2007.04.22 23:59
    • #1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아바나에서 여덟 시간. 지나친 태양의 열기와 여독에 지친 나는 비행기에 오르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긴 비행이었다. 해발 600여 m의 산티아고. 비행기 바깥으로 나오자 서늘하다 못해 한기가 들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사람의 몸은 왜 이리 연약한 것인지. 태양이 너무 뜨겁다고 아우성이더니 하루 사이 갑자기 낮아진 기온에 처량하리만큼 위축되고 만다. 밤의 산티아고는 계엄하의 거리처럼 적막하고 교교하다. 낮고 짙게 가라앉은 스모그 사이로 보이는 딱딱하고 직선적인 도시의 풍경이, 언젠가 늦은 밤에 도착한 동유럽의 어느 도시의 풍경과 닮았다.

      지구의 반대편, 지구상에서 가장 긴 나라, 이 칠레의 한 도시까지 나를 허위허위 이끌어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나는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니야, 그건 목소리는 아니었어.

      말도,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어.

      밤의 가지에서,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파블로 네루다 ‘시(詩)’ 중에서



      그랬다. 이곳까지 나를 불러온 건 파블로 네루다(1834~1891·작은 사진)라는 시인이었고, 바로 이 ‘시’의 구절들이었다. 나는 이 ‘시’가 어디서 나를 찾아왔는지 알고 있다. 오래 전, 영화 ‘일포스티노’를 보고 있던 그 시간에 네루다는 내 영혼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네루다가 망명지 이탈리아의 카프리섬에서 우정을 나누었던 한 시골우체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끝 장면으로 기억한다. 카메라가, 바위에 부딪쳐 흩어지는 포말을 비추며 지나가고,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로 시작하는 구절이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그 시는 내 머릿속으로 느닷없이 흘러들어와 내 기억 속에 단단히 자리를 잡아버렸다. 카프리 바닷가는 아니어도 지극히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면 나는 조용히 소리 내어 그 시를 외워보곤 했다.



    • #2 불과 얼음의 시인

      자애로운 인상의 하얀 성모상이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산크리스토발 공원에 들렀다 내려오는 길. 거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에게 네루다의 집을 물어본다. 사람 좋게 생긴 두 젊은이는 토론까지 해가며, 내가 내민 수첩에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준다. 골목을 빙빙 돌아 찾아간 네루다의 생가는 평범한 골목에 자리 잡은 이층 양옥. 그의 집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있는 레스토랑 ‘네루디아노’부터 들렀지만 주인은 웃으며, 10년 된 식당이며 그냥 네루다 집 근처여서 붙인 이름일 뿐이란다.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묵직한 목조문이 인상적인 그의 집은 기념관으로 꾸며놓았다. 구석마다 손에 잡힐 듯한 시인의 흔적. 집 앞으로는 그리스의 원형 극장을 닮은, 여섯 개의 돌기둥과 돌계단, 의자가 놓여있다. 지친 다리도 쉴 겸 거기 앉아 기다리면 파이프를 입에 문 노시인이 나무문을 밀고 나와 먼 곳에서 온 손님을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다.

    • 안데스 자락의 목초지에서 바라본 산티아고풍경
    • ‘파블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들은 모두 내면에 활화산을 하나씩 품게 되는 것일까. 엄청난 양의 작품도 작품이려니와 이글거리는 눈빛 속에 주체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넘쳤던 파블로 피카소. 내로라하는 첼로의 대가들을 어린애처럼 여기게 만들어버리는 첼로의 전설 파블로 카잘스. 그리고 이 남자, 파블로 네루다까지.

      이름 탓인지, 그는 칠레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지닌 시인의 한 사람으로 우뚝 선다. 좌파와 우파, 청년과 노인, 남자와 여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그의 시를 같이 암송하고 사랑한다. 특히 그의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는 온 세계의 젊은이들이 줄줄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일포스티노’에서는 정치적으로 핍박 받아 객지를 유랑하는 불우한 민중시인으로 그려졌지만, 실재로 그는 무척이나 다복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엔 외교관으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삶과 인간에 대한 체험을 했고 칠레 국민들로부터도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대사로 재직 중엔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연애는 원도 한도 없이 했다. 공식적인 결혼 세 번에 알려진 애인만 다섯 명. 애인인지 친구인지 경계가 모호한 여성은 부지기수였다나.

      그의 생애의 마지막 거처이자 그의 묘소가 있는 이슬라 네그라의 집에 이르면, 어쩌면 네루다는 가장 호사스러운 인생을 살다간 시인이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광활한 태평양의 파도를 내려다보는 바닷가 언덕에서 책을 읽고 사랑을 하고 시를 쓰던 그는, 이제 바닷바람과 햇살이 끊임없이 속살거리는 그 언덕에서 영원히 잠들어 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소라고나 할까.

      열아홉의 나이로 문단에 나와 40여 권의 시집, 3500여 편의 시를 불꽃처럼 터뜨린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을까. 관능, 환상, 대자연, 인간 등 그의 시가 다루지 않은 것은 없었다. 저항시와 연애시를 동시에 쓸 수 있었던 그 정서의 토양은 무엇이었을까. 가난한 철도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칠레 남부 테무코의 거칠고 황량한 자연 속에서 자라난 그를 그토록 사랑 받는 시인으로 키운 힘은 무엇이었을까.

      산티아고 시내 어디에서나 고개만 들면 바라보이는, 만년설을 이마에 얹고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안데스의 영봉이 눈과 가슴을 동시에 아득하게 만들어버린다. 저 안데스의 얼음덩이와, 시인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고 타오르던 활화산의 불이 뒤엉키는 지점, 바로 그곳에서 네루다의 그 독하고 강렬하고 관능적인 시어(詩語)가 뚝뚝 떨어져 내렸을 테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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