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빛 속에 인생이 녹아 들어 있다
입력 : 2007.02.04 23:53 / 수정 : 2007.02.0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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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 몸으로 쓰는 시, 탱고
탱고를 ‘육체로 쓰는 가장 아름다운 시’라 했던가.
온몸으로 쓰는 그 시의 온도는 몇도 쯤이나 될까.
공연 위주의 탱고극장이나 춤을 추기 위한 탱고바는 물론이고 간혹 거리에서 햇살을 받으며 탱고를 추는 커플들을 보고 있자면 새삼 탱고도시의 문맹처럼 느껴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광장을 거니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나무에 기대서서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는 연인들의 실루엣도 모두 탱고의 한 순간처럼 보인다. 도처에서 나그네의 정처 없음을 붙잡아주는 탱고의 선율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2 탱고의 두 기둥 미켈란젤로와 콜론 극장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세운 도시답게 이곳에는 이탈리아문화들도 함께 이민을 와 있다. 유서 깊은 탱고극장에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당당히 붙어있는 것이다. 너무도 먼 곳에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런 식으로 달랬던 것일까.
- ▲탱고의 동반자, 탱고의 영혼으로 일컬어지는 반도네온.
- 일년 열두 달 연중 무휴로 갖가지 공연과 문화행사가 열린다는 이곳에서는 시당국이 매달 찍어내는 문화행사 책자만도 100페이지를 넘는다 하니 그 저력을 알 만하다. 우리보다 먼저 IMF를 겪었고 대량 실업과 살인적인 인플레를 겪으면서도 산텔모 거리의 탱고극장들은 결코 문을 닫은 적이 없다 한다. 삶이 어려울수록 위로와 꿈을 찾는 민초들로 극장은 성시를 이루었다는 것. 먹고 살 만해야 그 다음에 예술이라는 통념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여지없이 전복된다. 삶의 신산한 고통과 외로움이 가중될수록 예술에의 집중력이 가열화되는 것이다.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이루어진 탱고극장들 중에서도 극장 미켈란젤로와 극장 콜론은 탱고와 오페라를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다. 3000석이 넘는 객석을 갖춘 콜론극장은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의 하나로 꼽힌다. 그에 반해 플로리다(Florida) 165번지의 뒷골목 미켈란젤로는 아담하고 단아한 탱고 전용 극장이다. 불세출의 탱고가수 카를로스 가르델을 비롯하여 무수한 탱고의 별들이 이곳을 스쳐 갔다. 원래 이 건물은 유서 깊은 산토도밍고 수도원 건물의 한 자락. 경건과 거룩의 상징인 영혼의 집이 농염한 탱고 공연의 무대가 된 것은 역설적이다. 하긴 수도원이나 탱고극장이나 고단하고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장소이긴 하지만.
17세기에 지어진 건물들과 옛 흑인 노예들이 깔았다는 돌길에는 그대로 역사의 체취와 흔적이 배어 있다. 마차를 타고 온 귀부인들이 좋아하는 탱고가수를 만나보기 위해 이 돌길 위에서 공연이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았다니 그 옛날의 우아한 오빠부대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돔 형태의 이 유서 깊은 벽돌 건물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조명을 받으며 박물관의 유물처럼 전시되어있는 오래 된 반도네온 하나.
반도네온은 탱고의 영혼, 탱고의 성감대로 불릴 만큼 탱고와는 뗄 수 없는 악기. 아코디언을 닮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네모난 긴 주름상자 양 끝에 단추 형태의 건반을 갖춘 이 악기는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매혹적인 음색을 갖고 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오르간 개념으로 만들어진 이 악기 역시 이민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왔다. 어둡고도 우수에 차 있어 듣는 사람의 마음 속에 내재된 슬픔과 단숨에 공명해버린다는 악기. 식량과 갖가지 생필품만으로도 벅찬 짐더미 위에 반도네온을 얹어온 사람은 누구였을까. 빵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오리라는 걸 알았던 그 사람은.
#3 지상에서 가장 짧은 연애
- ▲남녀가 뒤엉켜 추는 탱고는 한때 유럽에서 부도덕한 춤으로 수입금지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르헨티나를 넘어 세계의 춤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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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붉은 조명의 무대가 스멀스멀 움직이기 시작한다. 밤이 깊어가고 실내는 춤, 노래, 연주로 취해간다.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넷, 반도네온과 피아노의 6인조 오케스트라는 거의 70대의 노인 주자들이다. 그러나 탕고 프리미티보, 서막이 연주되자 젊고 잘생긴, 조각 같은 몸매의 남녀 댄서 탕게로와 탕게라들이 우르르 나온다. 무대는 아연 그 싱싱한 육체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빛으로 타오른다. 검은 턱시도, 기름 발라 넘긴 머리에 살짝 얹힌 중절모, 반짝이는 검정 구두의 탕게로와 육감적 몸매를 아슬아슬 드러내는 검은 드레스 아래 선혈 빛의 하이힐을 신은 탕게라. 저 도저한 관능성이라니. 온몸으로 추지 않는 춤이 있으랴마는 탱고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시작한다. 눈빛 안에 유혹과 관능, 격정과 한숨, 슬픔과 원망,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뜨겁게 얽혀 들었다가 싸늘하게 흩어지는 그 눈빛 속에 인생이 녹아 들어 있다. 눈물과 이별, 고통과 슬픔마저도 향연이 된다. 길게 찢어진 스커트 아래서 뻗어 나온 다리가 탕게라의 다리를 휘감았다가는 스르르 풀어진다. 마리아노 모레스의 애조 띤 음악 속에서 두 몸이 한 몸인 듯 절묘하게 어울렸다가 안타깝게 멀어질 때면 보는 사람의 가슴이 다 아릿해진다.
끈적끈적한 액체 속을 유영하는 듯하던 춤은 탕고 콘템포라리네오 판타지아탕고로…숨 가쁘게 이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산화하는 꽃잎처럼 스러져 보는 사람마저 목마르게 한다. 청춘의 연애가 그러하듯. 탱고를 왜 ‘지상에서 가장 짧은 연애’라 부르는지는 눈 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고 나서야 이해하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탱고는 자정을 훌쩍 지나서야 끝이 났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두운 하늘 가득 남반구의 별들이 꽃잎처럼 뿌려져 있다. 하늘로 비상한 탕게로와 탕게라의 별들인가. 탱고의 노랫말처럼 인생은 또 그렇게 가고 있었다.미켈란젤로극장 (MICHELANG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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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전용 극장 미켈란젤로는 1969년 산텔모 지역에 있는 17세기 건물로 이주하면서 빛을 발한다. ‘탱고의 사원’이라 불릴 만큼 탱고의 스타들이 이 무대를 지켜 왔다. 생전 피아졸라는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를 했고 이 극장을 무척 사랑하여 ‘미켈란젤로70’이라는 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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