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와 김일손 18회
- 김일손의 뛰어난 글솜씨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유몽인(1559∽1623)이 지은 『어우야담』과 19세기경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책 『기문총화』에는 김일손(1464∽1498)의 뛰어난 글솜씨가 실려 있다.
먼저 『어우야담』을 읽어보자.
김일손은 젊은 시절 재주가 있다는 명성이 자자했다. 무(武)재상이 그를 사위로 삼았는데 김일손은 짐짓 문장에 능하지 못한 척 하며 서재에 있으면서 읽은 것이라고는 오직 「십구사략」 뿐이었다. 김일손은 산사(山寺)에 올라가 공부하면서 장인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자주 보냈는데, 다른 말은 전혀 없이 ‘문왕몰 文王 沒 무왕출 武王 出 주공주공 周公周公 소공소공 召公召公 태공태공 太公太公’ 이라 쓰여 있었다.
장인이 편지를 보고 마땅찮아 소매 속에 감추었다. 이때 한 문사(文士)가 있었는데 그는 김일손의 명성을 익히 들었던지라 그 편지를 보고 싶어 했다. 장인이 부끄러워 감추려 하다가 그가 계속 졸라대자 결국 편지를 꺼내 보여 주었다. 그 문사는 편지를 한참동안 읽어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이 사람은 천하의 기재(奇才)입니다. 문왕의 이름은 창(昌)이요, 무왕의 이름은 발(發)입니다. 우리말로 신발 바닥을 창이라 하고, 족(足)을 발이라 합니다. 그러니 ‘문왕 몰 文王 沒 무왕 출 武王 出’은 ‘신발이 닳아 발가락이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공의 이름은 단(旦)이요, 소공의 이름은 석(奭)이며 태공의 이름은 망(望)이니, ‘주공주공 周公周公 소공소공 召公召公 태공태공 太公太公’은 ‘아침마다 저녁마다 기다리고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장인은 크게 기뻐하고 신발을 사서 보내주었다.
(유몽인 지음, 신익철 외 3인 옮김, 어우야담, 돌베개, 2006, p 252)
다음은 『기문총화』이다. 제목은 ‘장인에게 묘한 편지를 써 보낸 김일손’인데 내용은 『어우야담』과 비슷하다.
탁영 김일손의 자는 계운으로 김해김씨이다. 그는 효자로 이름난 김극일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이름이 알려지자, 무인(武人)으로 재상이 된 사람이 그를 사위로 삼았다.
김일손은 거짓으로 글재주가 없는 체하고 산사에 가서 글공부를 하였다. 그는 편지를 써서 장인에게 부탁하였다. 그가 보낸 짤막한 편지에는 별다른 말 없이 다음 글뿐이었다.
‘문왕 몰 文王 沒
무왕 출 武王 出
주공주공 周公周公
소공소공 召公召公
태공태공 太公太公’
김일손의 장인은 그 편지를 읽고 기껍지 않아 소매 속에 넣어 두었다. 마침 글을 아는 선비가 그 편지를 한동안 보더니 놀라 떨면서 말하였다.
“이 얼마나 기이합니까? 문왕의 이름은 창(昌)이요, 무왕의 이름은 발(發)입니다. 우리말로 신발 바닥을 창이라 하고, 족을 발이라 합니다. 그러니 이 말 뜻은 ‘신이 떨어져 발이 나왔다 ’는 말입니다.
주공의 이름은 단(旦)이요 소공의 이름은 석(奭)이며 태공의 이름은 망(望)이니, 이 말의 뜻은 ‘아침저녁으로 기다리고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김일손의 장인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신을 사서 보내주었다.
(김동욱 옮김, 국역 기문총화 상 – 새벽 강가에 해오라기 우는 소리,
아세아문화사, 2008, p 357-360)
그러면 「탁영 선생 연보」를 읽어보자
김일손은 1464년 1월 17일 경상도 청도군 상북면 운계리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절효공(節孝公) 김극일이고 부친은 사헌부 집의 김맹이며 모친은 용인이씨이다. 그는 셋째 아들로, 형 준손과 기손이 있었다.
김일손은 1471년에 용인 외가에 살며 소학을 배웠고 1478년 2월에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이 때 그는 남효온은 성균관에서 만났다. 김일손은 1478년 3월에 충청도 단양에서 단양우씨 참판 우극관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1479년에 김일손은 둘째 형 김기손과 함께 한성부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는데 1480년 2월에 치른 예조 복시엔 낙방하였다. 9월에는 밀양에 가서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김일손 지음, 김학곤 조동영 옮김, 탁영선생문집, 탁영선생 숭모사업회, 2012, p 687-688)
이를 보면 김일손이 산사에 들어가 공부한 시기는 1480년 2월에서 9월사이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무오사화와 김일손 19회
- 김일손, 책문 ‘중흥’에서 1등을 하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유몽인의 『어우야담』과 작자 미상의 『기문총화』에 실린 김일손의 뛰어난 글솜씨를 계속하여 읽어보자.
김일손이 그의 처형제들과 함께 동당시에 응시하였다. 그런데 초장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아무것도 쓰지 않고 돌아왔고, 중장에도 취해 자다가 또 쓰지 않고 돌아왔다. 종장 때가 되자 김일손은 초 · 중 · 종장의 시험 답안지를 모두 붙여 수십 폭을 이어 시험장에 들어갔다. 시관(試官)이 책문의 제목을 중흥이라고 내걸었는데, 역대 중흥주 가운데 송나라 고종이 들어 있었다. 김일손은 제목을 써서 내건 종이를 말아 시관 앞에 나아가 말했다.
“송나라 고종은 한 귀퉁이에서 피하여 구차하게 안일만 도모하면서 어버이의 원한을 풀어 드리는 일을 잊고, 개돼지 같은 자들에게 화친을 구걸했는데, 어떻게 은나라 고종 및 주나라 선왕과 함께 나란히 중흥주 명단에 놓을 수 있습니까? 고쳐주길 청합니다.”
송나라 고종(1107~1187)은 남송(南宋)의 개국황제(開國皇帝)로서 송휘종(宋徽宗)의 아홉째 아들로 송흠종(宋欽宗)의 아우이다. 1127년에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이 금(金)나라로 끌려간 후에 남경(南京) 응천부(應天府)에서 즉위했다. 연호를 건염(建炎)으로 삼고, 송(宋)나라를 중건했다. 역사서에는 ‘남송(南宋)’이라 일컫는다.
그는 금나라에 쫒겨 남쪽으로 도피하여 임안(臨安)을 수도로 삼았다. 악비등 주전론자를 물리치고 진회등 주화론자를 등용하여 금나라와 굴욕적인 화의를 맺었다.
“이러자 시관이 크게 부끄러하며 그의 말대로 제목을 고쳐 주었다. 김일손은 취기가 거나하게 오르자 일필휘지로 수십폭을 내리 쓰고 돌아왔는데, 해가 아직 기울지도 않았다.
그의 장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김서방은 오늘도 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왔느냐?”
아들이 대답했다.
“오늘은 황당하고 어지러운 언사를 하며 더럽게 먹칠만 하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방(榜)이 내걸린 날이 되자 김일손은 사람을 시켜 가보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렀다.
“너는 가서 맨 위 첫 번째 이름만 보고 오너라. 그것이 내 이름이 아니거든 즉시 돌아올 것이요. 더는 볼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이 가보니 과연 김일손이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처가에서는 크게 놀라 그제야 그를 대접함에 공경을 다하였다. (유몽인 지음, 신익철 외 3인 옮김, 어우야담, 돌베개, 2006, p 421-422 : 김동욱 옮김, 국역 기문총화 상– 새벽 강가에 해오라기 우는 소리, 아세아문화사, 2008, p 357-360)
『탁영선생문집』의 「탁영선생 연보」를 보면 김일손은 1482년 10월에 두 형(김준손, 김기손)과 함께 정시에 나갔으나 일부러 병을 칭탁해 시험을 보지 않았고, 두 형은 급제하였다. 그런데 그는 1483년에 부친상을 당하여 1485년에 상복을 벗었다. 김일손은 1486년(성종 17) 7월에 초시에 합격하고 8월에 복시에도 합격하였다. 9월에 식년 정시 초시 3장에 연달아 수석으로 합격하고, 10월에 복시 중흥(中興) 책문에 제1인으로 합격하였다.
『탁영선생문집』에는 ‘중흥’에 대한 책문과 김일손의 대책이 실려있다.
책문의 첫 부분을 읽어보자.
“자고로 제왕이 나라를 일으킬 때는 한무리의 군사로서 능히 천하를 취하여 대업(大業)을 이루었으나, 그 자손이 도리어 지켜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쇠약해져서 떨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나라의 개창(開創)고 수복(收復)이 그 형세가 다른 것인가?”
(김일손 지음, 김학곤·조동영 옮김, 탁영선생문집, 탁영선생 숭모사업회, 2012, p 323-339, 688-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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