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조약의 한국 근대사 (16)
- 운양호 사건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875년 8월 20일(양력 9월 20일)에 강화도 조약의 빌미가 된 운양호(雲揚號)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정부는 춘일(春日) · 운양 · 제2정묘호(第二 丁卯號) 등 군함 세척을 조선 근해에 파견했다. 운양호는 1875년 4월 20일에도 부산에 입항하여 무력 시위를 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해로 탐사를 구실로 서해를 거쳐 강화도까지 올라갔다. 운양호는 8월 19일 오후에 강화도 앞바다 월미도 해안에 정박했다. 8월 20일 오후에 운양호 선원 14명이 보트를 타고 강화도로 접근하자 초지진에서 포격을 가했다. 초지진 포대의 사정거리 밖에 있었던 운양호는 기다렸다는 듯 함포 사격을 하였다. 영국에서 사들인 신식 군함 운양호의 함포 사정거리는 1km 밖 이상인데 반하여, 조선 화포는 최대 사거리 700m에 명중률도 낮은 구식 홍이포였다.
8월 21일에 일본은 10시부터 12시 40분까지 초지진을 포격하고 오후 1시에는 초지진 아래의 항산도 포대도 파괴했다.
8월 22일 오전 8시경 중무장한 일본 해군 22명이 영종도에 상륙했다. 이러자 영종첨사 이민덕과 600명의 관민은 싸워보지도 않고 도주했다. 일본군은 조선군 35명을 죽였으며 17명을 포로로 잡아갔고, 조선 대포 36문, 화승총 130여 자루 등을 노획했다. 일본 측은 전사 1명, 부상 1명뿐이었다. 8월 28일에 운양호는 유유히 나가사키로 돌아갔다.
조선군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함대를 강화도에서 물리쳤다. 그런데 신미양요 4년 만에 이렇게 무력해진 것이다.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친정하자 국방에 구멍이 크게 뚫린 것이다.
한편 운양호 사건이 일어난 1주일 뒤인 8월 29일에 고종은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좌의정 이최응이 아뢰었다. 이최응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친형이다.
"일전의 영종진 사건은 너무 격분할 일이어서 말을 꺼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설사 성이 고립되고 군사가 적다고 하더라도 추악한 무리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것을 좌시한 채 600명이나 되는 포수와 군사들이 겁에 질려 쥐새끼처럼 도망쳐버렸습니다. (중략)
병인년(1866)에 양요(洋擾)를 겪은 뒤에 10년 동안 군오(軍伍)도 늘리고 성벽도 튼튼히 하고 무기도 수리하고 군량도 비축했으며 기예(技藝)를 단련하고 포상으로 격려하고 권장하는 등 조정에서 아주 치밀한 대책을 세웠는데, 지금 보니 너무나 한심합니다. 저들의 배가 방금 물러갔다고 하여 조금도 해이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
우의정 김병국도 아뢰었다.
"이양선이 지금 물러갔지만 조금도 경계를 늦출 수 없습니다. 앞일을 걱정하고 미리 준비를 갖추는 일은 늦출 수 없으며 안으로 국정을 닦고 밖으로 침략을 막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오늘의 급선무입니다."
이에 고종이 하교하였다.
"안으로 국정을 닦고 밖으로 침략을 막는 일은 참으로 오늘날의 급선무이다. 어찌 가슴에 새겨두지 않겠는가?"
(고종실록 1875년 8월 29일)
하지만 고종은 친위대인 무위소만 강화시키고, 변방 방어는 소홀히 하였다.
두 달 후인 10월 25일에 고종은 이최응과 독대하였다.
좌의정 이최응이 아뢰었다.
"지금 남쪽과 북쪽 변방에 우환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데 사람들의 의논이 정해지지 않았고 중외의 창고 비축이 바닥이 나서 경비를 조달할 길이 없습니다. 물가(物價)는 점점 뛰어오르고, 도적은 많이 일어나며, 외읍(外邑)에서는 아주 사납고 매섭게 세금을 거두면서 경사(京司)에 상납하는 일에서는 시일을 끌고 있으며, 사치가 풍속을 이루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구별이 없으며, 탐관오리가 징계되지 않아 재물을 긁어모으는 것을 일삼고 있으니, 이와 같아서야 나라가 어떻게 나라 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고종실록 1875년 10월 25일)
나라는 내우외환이었다. 국방은 불안하고 재정은 고갈되었으며 물가는 오르며 부패는 만연하였다.
그런데 10월 28일에 동래부에서 일본 선박의 선원들이 초량리에 불법적으로 들어와 민가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변정(邊政)의 해이는 이미 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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