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즉위 40주년 (2)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1년 12월 24일에 황태자가 백관을 거느리고 정청(庭請)하여 아뢰었다. (고종실록 1901년 12월 24일 1번째 기사)
"소자의 절박한 심정으로 거듭 간절한 심정을 아뢰고 심지어 두 번의 상소까지 올리고서는 폐하의 마음이 돌아서서 윤허를 내리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폐하의 비답을 받고 보니 더욱 겸손하게 사양하면서 내년 정월 초하룻날 고포(告布)하고 칭하(稱賀)하는 의식에 대해서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사로운 해에 늘 시행하는 작은 의식일 뿐이고 가장 큰 의식으로서 반드시 준행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아직 허락받지 못하였으니 소자는 답답하고 안타까워 더욱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의 춘추가 높으신 것은 억만년 무궁할 터전으로써 하늘이 도와준 것이고 종묘와 사직과 만백성의 복입니다. (중략)
내년(1902년)은 우리의 부황 폐하께서 51세가 되고 왕위에 오른 지 40돌이 되는 두 가지 경사가 한 해에 겹친 해인데 이런 경사는 오랜 세월에 만나기 드문 큰 경사입니다.
연회를 열어 신자(臣子)의 기뻐하는 성의를 표시하고 공로와 덕을 드러내어 존호를 올리는 것은 원래 우리 왕조의 변함없는 법입니다. (중략) 소자의 말은 소자의 사적인 말이 아니라 바꿀 수 없는 떳떳한 법이며 온 나라 사람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그러니 부황 폐하께서도 단지 소자의 말로 여기고 막아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략) 그래서 감히 조정의 모든 관리들을 거느리고 일치한 목소리로 호소하니 부황 폐하께서는 특별히 소자가 앞서 청한 것에 대해 속히 윤허해 주소서."
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너의 효성을 짐이 왜 알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두 차례의 비답에서 정중히 타일렀으니 너도 마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재하여 시행할 만한 것을 헤아려 마지못해 따랐으니 그만하면 절충하여 알맞게 처리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또 어째서 이렇게 일을 확대시키는가? 다시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고종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황태자는 다시 백관을 거느리고 정청하여 두 번째로 아뢰었다. (고종실록 1901년 12월 24일 2번째 기사)
"소자가 성의를 다해서 아뢴 것도 이제는 벌써 여러 차례가 되었건만 허락하실 의향은 전혀 없고 윤허가 아직도 내리지 않고 있으니 모르기는 하지만 부황 폐하께서는 아들의 말을 사사로운 간청으로 여기는 것입니까?
이는 조정에 가득 찬 관리들이 손을 모아 다 같이 빌고 온 나라 사람들이 일치한 목소리로 호소하니 실로 천하의 공론입니다.
아! 우리 부황 폐하께서는 거룩하고 신성하며 문무(文武)의 자질로 하늘의 밝은 명령을 받고 큰 공로를 이룩하여 큰 칭호를 받았습니다.
(중략)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억만년 무궁할 크나큰 터전을 태산처럼 굳건히 다져놓았습니다. 대체로 나라를 이어받아 지켜나간 업적에 나라를 세워 후대에 물려주는 계책까지 겸한 점에서는 이전 시대를 두루 상고해 보아도 오직 우리 부황 폐하뿐이니 아! 훌륭합니다. 하늘이 돌보아 온갖 복을 내려주고 끝없이 장수할 운수를 내려준 것입니다.
이번에 새해가 돌아오면 큰 경사가 이르러 51세에 접어들고 왕위에 오른 지 40돌이 되는 두 가지 경사가 일시에 겹치게 되니 실로 역대 임금들 때에 드문 일입니다. 존호(尊號)를 올려 훌륭한 덕을 드러내고 옥(玉) 술잔을 올려 장수를 축원하는 것은 나라의 떳떳한 법이니 신민(臣民)의 정성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자의 이런 간청은 예법에 없는 예법을 감히 억지로 청하면서 번거롭게 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조종(祖宗)들이 예전에 시행하여 온 것이니 어찌 빛나는 훌륭한 법이 아니겠습니까? 폐하께서 아무리 겸손하게 받지 않으려고 해도 선대의 법을 지키는 원칙으로 보아 끝내 사양할 수는 없습니다. (중략) 감히 번거롭게 굴면서 간절하게 청하니, 부황 폐하께서 굽어 살펴 소자의 청을 빨리 윤허하고 훌륭한 전례를 시행함으로써 지극한 소원을 풀어주소서."
하지만 고종은 황태자의 청을 거절했다.
"너는 한번 생각해보라. 저축이 거덜 나고 경비를 마련하기도 어려워 눈앞의 급한 일도 수습할 방책이 없다. 더구나 그만두어도 되는 일이고 현행 정사에 별반 급하지도 않은 일이니 네가 아무리 번거롭게 간청하더라도 절대로 따를 수 없다. 너는 그리 알라.“
그런데 고종은 황태자가 또 청하더라도 다시 거절할까?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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