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고종 (5)
- 공정인가? 사리사욕인가?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4년(고종 41년) 7월 15일에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 안종덕은 고종의 공정에 대하여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금 폐하는 공정한 것을 좋아하나 조정에는 사리사욕이 넘쳐나고, 관리들 간에는 당(黨)이 갈라졌으며, 벼슬을 얻어 나가려는 자들은 대궐 안의 비호 세력과 결탁하고 세력에 끼려는 자들은 외세에 의지합니다.
재주도 없이 턱없는 과분한 벼슬을 지내는 것은 모두 세도 있는 집안의 인척들이고, 죄를 지고도 요행수로 면하는 것은 모두 권세 있는 가문의 청탁 결과입니다.
임용해야 할 벼슬자리가 있으면 비천한 자들을 사대부들보다 먼저 앉히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면 도적보다 더 심하게 빼앗아 냅니다.
천하에 잘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사익을 채우는 일 한 가지뿐이니 이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신은 폐하(陛下)의 공정(公正)함이 진실한 공정함이 아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신이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공정이란 천리(天理)의 바른 것입니다. 추호도 욕망의 사사로움이 없어야 그것을 공정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드문 큰 공을 세우기는 쉽지만 지극히 은밀한 본심을 보존하기는 어렵고, 중국이 오랑캐들을 내쫓기는 쉽지만 자기 한 사람의 사사로운 욕심을 없애기는 어렵다고 한 선현의 말씀은 매우 크나큰 경계로 삼을 만합니다.
모르기는 하여도, 폐하께서는 한가로이 홀로 있을 때나 조용히 사물을 대할 때 마음속에 공정만 있을 뿐 추호라도 욕심의 싹이 없었습니까? 이것은 폐하만이 알 수 있는 것이지 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정령(政令)과 하는 일들로 미루어 폐하의 마음을 더듬어 보면 순전히 공적인 마음에서만 출발한 것이 아닌 것도 있는 듯합니다.
갑오경장 이후에 이른바 칙임관(勅任官)·주임관(奏任官)·판임관(判任官)의 구별이 있었지만, 한 사람도 위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즘의 관보를 보니, 칙임관·주임관·판임관의 벼슬이 매번 가까이 돌면서 사적인 총애를 받거나 점쟁이나 이단(異端)의 무리들에게 내려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 두 무리들에도 어찌 등용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기야 하겠습니까마는, 명철하고 너그러운 임금들치고 이러한 무리들에게 높은 총애와 신임을 베푼 임금은 없었습니다.
대체로 이 무리들로 말하면 안팎으로 연계를 맺고 어디에서나 구애받지 않으며 간사한 술법을 숭상하여 심지가 간교한지라, 안으로는 남을 헐뜯고 시비를 전도하며 밖으로는 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권세를 구합니다.
그리하여 이익을 좋아하고 염치없는 시속 무리들이 앞다투어 추종하며 저마다 아부하여 편당을 만들고는 자기들과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쫓아냅니다. 이런 형세가 필경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야 말 것이니, 어찌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중앙과 지방의 높고 낮은 관리들은 대부분 지조가 없고 턱없이 벼슬을 차지한 자들입니다. 약간이나마 염치가 있고 조금이나마 절개를 지닌 사람들은 임용되자마자 바로 쫓겨나고 벼슬에 나서자마자 물러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폐하의 공정한 마음을 헤아려서 왔다가 나중에는 이 무리들의 배척을 받고 떠나버립니다.
옛날의 어진 임금들은 저물녘에는 편히 쉬고 아침이 밝으면 정사를 보는 자리에 나가 엄숙하고 조용한 가운데 면류관을 바로 쓰고 남면(南面)하여 앉아 너그러운 마음과 편안한 몸으로 하루에 세 번씩 어진 관리들을 접견하여 위로는 중국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리를 논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곤궁을 걱정하였는데, 말하는 것이 공정하며 임금은 사사로움이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훌륭한 임금이 마음을 닦아 훌륭한 정사를 이룩하는 방도입니다.
대궐 안의 일은 알아서 안 될 일이기 때문에 신이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만히 듣건대, 폐하는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어 정오가 지나서야 일어나므로 아침 식사를 들자마자 벌써 날이 저물어버린다고 합니다.” (계속)
두 얼굴의 고종 (6)
- 안종덕, 사적 총애를 경계하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4년(고종 41년) 7월 15일에 공정에 관한 안종덕의 상소는 계속된다.
“가만히 듣건대, 폐하는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어 정오가 지나서야 일어나므로 아침 식사를 들자마자 벌써 날이 저물어 버린다고 합니다.
대문이 열리면 행랑(行廊)이 마치 시장 같아지고 항간의 잡된 무리와 시골의 부정한 무리들이 밀치며 꼬리를 물고 달려들어서는 폐하 앞에서 버릇이란 전혀 없이 부산스레 들락날락하니, 말하는 것이란 무엇을 꾀하는 것이며 도모하는 것이 무슨 일이겠습니까?
폐하를 보좌하여 일을 주관해야 할 높은 관리들과 폐하를 위해 생각도 하고 논의도 해야 할 경연(經筵) 신하들은 해가 지나도록 폐하를 만나 뵙지 못하고 그저 문서나 받아 처리하며 녹봉이나 축내면서 구차하게 벼슬자리나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판이니 그 속에서 나오는 계책과 온 나라에 시행되는 정사가 과연 공정한 것이겠습니까, 사적인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명철한 임금이 정사를 베푸는 원칙에 손상을 주는 것 일뿐 아니라, 옥체를 조섭하는 도리에도 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신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정사의 도리에 마음을 집중하고 옛 문헌들을 널리 보았으므로 옳고 그른 것과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것이라든가, 정사가 잘 되고 못 되는 것과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가까이에서 맴돌며 사적인 총애를 받는 자들이 조정의 벼슬을 널리 차지하고, 불순하고 이단을 숭배하는 자들이 대궐에 드나드는 것은 폐하의 덕에 누를 끼치고 성세(盛世)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가 있다 하여 없애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정사가 뜻대로 되지 않고 여러 번 난리를 겪고 나니 조정 신하들의 용렬함을 굽어보다가 귀찮다는 마음이 생기고, 변란이 끝없음을 깊이 걱정하다가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마침내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많이 두고, 계책과 술법을 쓰는 자들을 은밀히 찾아 위급한 난국에 대처하자는 것인지요? 폐하(陛下)의 생각이 이런 데서 나왔다면 그것은 오히려 공정한 도리가 아닙니다.
(중략) 어진 사람을 등용하고 유능한 사람에게 벼슬을 맡기며 마음을 터놓고 공적인 것을 시행하며 누구나 똑같이 어질게 대하고 누구에게나 전심으로 대한다면 조정의 모든 관리들이 어찌 폐하의 팔다리 노릇을 하지 않고, 온 나라 군사와 만백성이 어찌 폐하의 자식 노릇을 하지 않으며, 불행하게 위태로운 때를 만난들 어찌 폐하를 위해 한 목숨 바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도모하지 않고 사적인 총애만 오래 하다보면,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은 몇 안 되고 나머지는 모두 먼 사람이 될 것이니 폐하의 소유가 어찌 적어지지 않겠으며 폐하의 형세가 어찌 외로워지지 않겠습니까?
이른바 사적인 총애를 받는 자들이란 어려운 때에는 믿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공적인 도리를 널리 시행하여 사적인 총애를 받는 자들을 내쫓고 신망 있는 사람을 널리 등용하소서. 무슨 대책을 세울 때에는 조정에 묻고 개인들과 의논하지 말며, 관직을 맡기기 위해서 인재를 선발하는 경우에는 벼슬에서 물러난 지조 있고 충직한 선비들 속에서 구할 것이요, 연줄을 대어 결탁하는 간사하고 부정한 무리들 속에서 찾지 말 것입니다.
하늘이 준 지위와 직책을 어진 사람들과 함께 지켜나가며 감히 개인적인 은혜를 베푸는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면 해와 달이 다시 빛나고 만방이 다 우러르고 조정이 깨끗해지고 온 나라가 기뻐 감복하여 임금의 교화가 크게 시행될 것이니 폐하께서는 굽어살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