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청백리 류성룡과 ‘징비록’(1)
- 천지일보 (newscj@newscj.com)
- 승인 2019.12.12 22:45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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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의 저자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청백리가 된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다. 1601년 10월에 류성룡은 이원익과 함께 청백리로 뽑혔다. 영의정 이항복이 서애를 추천했는데 “이는 미오(郿塢)의 무고를 씻어 주기 위함”이었다. 미오는 중국 섬서성에 있는 지명인데, ‘삼국지’에 나오는 후한의 간신 동탁이 미오에 성을 쌓고 온갖 보화를 저장했다.
이이첨을 비롯한 북인들은 류성룡을 탄핵하면서 그를 부정축재자로 몰았다. 즉 “세 곳의 전장(田莊)이 미오(郿塢)보다 더하다”고 한 것이다.
한편 1598년 11월 19일에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고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났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 날 류성룡은 파직 당했다.
류성룡의 파직은 1598년 6월 명나라 감찰관 정응태가 경리 양호를 탄핵한 것이 발단이었다. 양호가 1598년 1월에 가토 기요마사와 싸운 울산성 전투를 승전으로 허위 보고했다는 것이다.
선조는 양호를 변호하고자 영의정 류성룡에게 명나라로 가라고 했다. 그러나 류성룡의 입장은 분명했다. 양호의 탄핵은 명나라 내부의 문제일 뿐 조선이 개입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러자 선조는 좌의정 이원익을 사신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 일이 더 커지고 말았다. 정응태가 조선을 양호와 함께 싸잡아 탄핵한 것이다. 정응태는 조선이 양호와 부화뇌동해 명나라 조정을 속이고 있고, 조선이 왜를 끌어들여 요동을 탈취해 조선의 옛 강토를 회복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선조는 아연실색했다. 9월 23일부터 선조는 명나라 황제 처분을 기다린다며 정사를 보지 않은 채 거적을 깔고 대죄했다.
그런데 상황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9월 24일에 북인 이이첨이 상소했다. 그는 즉시 명나라에 변무 사신을 보낼 것을 주청하면서 류성룡이 사신으로 안 간 것을 탄핵했다.
9월 25일에 류성룡은 사직을 청했다. 선조는 사직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끝나지 않았다. 북인은 계속 탄핵 상소를 냈고 선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간들의 상소는 더 격렬했다. 상소 내용도 명나라 사신으로 안 간 죄에 멈추지 않고, 주화오국[主和誤國]이 추가됐다. 즉 류성룡이 일본과 화친을 주도해 나라를 망쳤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류성룡과 동문인 퇴계 이황의 제자 조목도 가담했다. 조목은 류성룡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선생이 평소 배운 것이 단지 ‘화친을 주장하여 국사를 그르치는 [主和誤國]’ 네 글자뿐입니까? 나는 당신이 성현의 글을 알면서 이런데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고 했다. (선조실록 1597년 10월 16일)
퇴계 동문도 이러했으니 북인은 류성룡 축출에 열을 올렸다. 북인들은 류성룡을 탄핵하면서 그를 남송의 진회와 같이 나라를 망하게 한 간신, 삼국지의 동탁과 같은 부정축재자로 마녀사냥을 계속했다.
이순신도 완도 고금도에서 류성룡의 탄핵소식을 들었다. 그는 “시국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는가”라고 크게 탄식했다.
10월 6일에 성균관 유생 정급 등이 연명하여 탄핵 상소를 올렸다. 성균관의 상소는 영향력이 큰 공론이었다. 류성룡은 사직 상소를 여러 번 올리고 동문 밖으로 처소를 옮긴 후 선조의 처분을 기다렸다.
마침내 11월 19일에 선조는 류성룡을 파직시켰다. 탄핵을 빌미로 한 토사구팽이었다. 어떤 역사학자는 이를 개혁세력에 대한 수구세력의 반격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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