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 (newscj@newscj.com)
- 승인 2019.10.03 18:31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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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기생 황진이 묘에 잔을 붓고 제를 지낸 풍류객 백호 임제(1549∽1587)의 『재판받는 쥐(鼠獄說)』를 읽었다.
이 소설은 쌀을 지키는 창고신이 곡식을 다 털어먹은 간사한 쥐를 잡아 재판하는 사건을 다룬 우화소설이다.
소설은 늙은 쥐가 나라의 창고 벽을 뚫고 들어가 10년간 곡식을 훔쳐 먹다가 창고 신에게 들켜 재판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늙은 쥐는 자기가 창고 벽을 뚫기 시작했을 때 복숭아꽃과 버드나무가 도왔다고 둘러댄다. 창고신은 복숭아꽃과 버드나무를 잡아다가 심문한다. 그러나 이들은 무고하다고 항변한다. 이어서 쥐는 고양이와 개, 족제비와 두더지, 여우와 삵, 고슴도치와 수달이 자기를 도왔다고 차례로 진술한다. 창고신은 이들도 잡아다가 심문하였으나 이들 역시 무죄를 주장한다. 간사한 쥐는 이번에는 노루와 토끼, 사슴과 소와 말, 호랑이와 용 등이 자기를 도왔다고 둘러댄다. 창고신은 이들 짐승을 가두고 심문하였지만 이들도 항변한다.
화가 난 창고신이 다시 쥐를 심문하니, 간사한 쥐는 앞의 동물의 죄상을 일일이 늘어놓더니, 이번에는 달팽이와 개미, 제비와 개구리, 솔개와 올빼미, 거위와 오리, 독수리와 원앙, 학과 공작새 등이 사주하였다고 둘러댔다. 심지어 하루살이와 잠자리, 파리와 모기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렇게 교활한 쥐가 죄과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갖은 술책을 다해 남에게 책임전가를 하자, 창고신은 쥐를 쇠줄로 결박하여 기둥에 거꾸로 매달은 다음 가혹한 형벌을 내리라고 명령한다.
늙은 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시 한 번 모든 새와 짐승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면서 어떻게 하든지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심지어 간교한 쥐는 이 모든 것이 상제의 명령을 받들고 한 것이며 자기는 전혀 죄가 없다고 진술한다.
이 말을 듣고 창고신은 노하여 “이 늙은 도둑놈이 몇 달을 두고 수많은 새와 짐승들을 끌어대며 온갖 악담을 토하다가 종말에는 외람되게 상제까지 사주자로 지목하였으니 이는 대역부도 죄인이라”면서 상제에게 자세히 보고한다.
임제는 ‘태사씨(太史氏)’의 말을 빌려 마지막을 장식한다.
태사씨는 말한다. “불은 당장에 꺼버리지 아니하면 번지는 법이요, 옥사는 결단성이 없이 우유부단하면 번거로워지는 법이다. 만일 창고신이 늙은 쥐의 죄상을 밝게 조사하여 재빨리 처리하였더라면 그 화는 반드시 그렇게까지는 범람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 간사하고 흉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이 어찌 창고를 뚫는 쥐뿐이랴? 아 참! 두려운 일이로다”
이렇게 임제는 옥사의 우유부단과 부패한 쥐의 간교함을 날카롭게 질타했다.
교활한 쥐는 온 강물을 흐리게 하는 미꾸라지와 같다. 1912년에 중국 이종오가 말한 ‘후흑(厚黑)’이기도 하다. 두꺼운 낯가죽은 후안(厚顔)이고, 시커먼 심보는 간웅 조조(曹操)같다. (야오간밍, 노자강의, P 392)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가? 후흑(厚黑)한 쥐들은 없나? 있다면 꼭 잡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출처 : 천지일보(http://www.newsc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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