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7) 에르미타시 박물관
승인 2019-09-05 09: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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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시(The Hermitage)’란 이름은 프랑스어로 ‘은둔지(place of solitude)’란 의미인데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에카테리나 2세(1729~1796, 재위 1762~1796)이다.
매우 흥미로운 점은 예카테리나 2세는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남편 표트르 3세를 186일 만에 폐위시킨 여제(女帝)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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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3세(1728~1762, 재위 1761~1762)는 표트르 1세의 외손자인데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일에서 살면서 1745년에 엘리자베타 여제( 1709~1761, 재위 1741~1761)가 간택한 프로이센 한 지역의 공주 소피아(나중에 예카테리나 2세)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표트르는 아내와 관심이 없었고 공개적으로 외도했다. 또 아내를 모욕주고 폭력도 휘둘렀다.
엘리자베타 여제가 후손 없이 1761년 12월25일에 죽자 표트르 3세가 황제가 되었다. 당시 러시아는 7년간의 전쟁 끝에 프러시아를 거의 멸망시켜 1760년 9월에 베를린에 입성하고 1761년에는 콜베르 요새를 점령하여 프러시아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자살을 시도했다.
그런데 표트르 3세는 황제가 되자마자 프러시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중지하고 프리드리히 2세와 동맹을 맺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표드르 3세의 반 국익적 행위로 인해 군인과 귀족들은 큰 불만을 가졌다. 이어서 표트르 3세가 모든 러시아 정교회의 재산을 몰수해 국유화해버렸고, 성직자들에게 수염을 깎고 루터교의 목사처럼 옷을 입으라고 강요하자, 성직자들마저 등을 돌렸다. 이러자 예카테리나는 케남편과 달리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하여 국민들의 환심을 샀고 궁정 귀족들과 친위대 장교들의 존경을 받았다.
1762년 6월28일 아침에 장교복장을 한 예카테리나는 말을 타고 친위대 병영에 도착하여 표트르 3세의 반 러시아적 정책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궁정혁명이었다. 이에 친위대는 에카테리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표트르 3세를 체포하여 구금했다. 이후 표트르 3세는 구금 상태에서 1주일 만에 살해되고 말았다. (문명식 편역, 러시아 역사, 294-295)
에르미타시 박물관의 역사도 예카테리나 2세의 개인 컬렉션에서부터 시작된다. 1764년에 예카테리나 2세는 베를린 상인 고츠콥스키의 부채를 탕감해주면서 그 대신 225점의 그림을 받았다. 이 그림들에는 루벤스, 렘브란트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그녀는 1769년에 티치아노 등의 그림 600점, 1772년에는 라파엘 푸생 등의 그림을 더 구입하여 컬렉션이 더욱 풍성해졌다.
그녀는 은둔의 방에서 극히 한정된 사람과 은밀하게 환담하면서 소장품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림을 전시할 공간이 부족하자 1771~1778년에 궁전 건물을 추가로 지었다. 예카테리나 2세는 계속 그림을 사 모아 그녀가 죽을 당시에는 3996점이나 되었다.
한편, 에르미타시 박물관은 1852년에야 일반에게 공개되었는데, 이곳은 고대 이집트와 스키타이 황금 유물, 그리스-로마의 조각,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등은 물론 고흐, 마티스, 피카소, 루벤스, 렘브란트, 로댕 등 유명 화가 · 조각가들의 그림과 조각 작품들이 270만 점이나 있다.
이 작품들을 1분씩만 보아도 5년이 걸린단다.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려면 27㎞를 걸어야 한다니 두 시간 정도의 관람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귀족처럼 겨울궁전을 걸으면서 명작들을 감상한다니 너무 설렌다.
마침내 박물관 입구를 통과하여 겨울궁전에 들어왔다.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요르단(Jordan) 계단이 보인다. 흰색 계단에는 빨간 카펫이 깔려 있고, 금장 장식과 조각들, 그리고 천장의 그림에 압도당한다. 탄성(歎聲)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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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계단’이란 이름도 흥미롭다. 요르단은 마태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이 유다 광야의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강 이름이다. ‘요단 강 건너서 만나리.’란 찬송가 구절도 생각난다.
요르단 계단은 1월 19일 예수 세례 대축일과 관련이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 날 네바 강에서 강물로 세례를 받는다. 꽁꽁 얼어붙은 강에 세례를 위해 뚫은 얼음 구멍 이름이 ‘요르단’이었다.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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