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의 호찌민 -1- <1052호>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17 15:20
# 하노이 바딘 광장 “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이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생존, 자유, 행복의 추구권이 그러한 권리이다’ 이 불멸의 선언은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이렇게 연설을 시작한 호찌민은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를 이야기하고 베트남은 자유와 독립을 누릴 권리가 있고 베트남 인민은 이를 수호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역설했다. 1919년에 호찌민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프랑스에서 ‘베트남 애국자 연합’을 결성하고 「베트남 민족의 요구」 글을 발표했다. 이후 호찌민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1930년에 호찌민은 홍콩에서 베트남공산당을 창당했고, 1941년에 베트남에 돌아와 ‘베트남독립동맹’을 결성했고 투옥되기도 했다.
호찌민은 북베트남이라도 독립정부를 만들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중국이 큰 걸림돌이었다. 호찌민은 중국을 몰아내기 위하여 프랑스와 협상하였다. 호찌민은 프랑스에게 경제적 이익을 양보하는 대신에 프랑스 군대가 중국군을 몰아내고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해 주는 전략을 택했다. 프랑스측은 중국군을 몰아내는 것은 동의했지만 독립은 ‘NO’였다. 협상은 6개월이나 진행되었다. 그러나 양측은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러자 일부 강경파들은 프랑스와 당장 싸우자고 주장했다. 호찌민은 지금은 세력이 약하니 냉정을 호소했다. “중국이 주둔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요? 중국은 우리나라를 1천 년 간 지배했소. 하지
“우리나라는 1945년 8월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 중 어느 나라도 우리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프랑스와의 합의는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합의서대로 1만 5천 명의 프랑스군이 5년간 주둔하고 베트남에서 철수 할 것입니다. 5년 안에 독립을 달성할 수 있는데 왜 100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켜야 합니까? 우리는 냉정을 유지하고 단결을 강화해야 합니다.” 연설 끝에 호찌민은 단호한 어조로 베트남 국민에게 약속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segon53@daum.net <저작권자 © 명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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