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26 안중근 의거 사건 정리
1회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조선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태운 특별열차가 중국 하얼빈 역에 멈췄다.
곧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가 열차에 올랐다. 약 25분간 대화를 나눈 뒤 이토 히로부미는 코코프체프의 안내를 받으며 열차에서 내려 도열한 의장대를 사열하고 각국 사절단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이때 안중근(1879~1910) 의사는 러시아 의장대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토가 10여보 떨어진 지점에 이르렀을 때 안중근은 탄환 7발을 장전한 브라우닝 권총을 꺼내들고 총을 쏘았다. 제1탄은 이토의 가슴에 명중되었고, 제2탄은 흉부를 맞췄다. 3탄도 그의 복부를 관통하자 이토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그런데 안중근은 쓰러진 자가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반사적으로 옆에 있는 가장 위엄 있게 보이는 사람에게 총을 쏘고 이어서 그 옆 두 사람에게도 한 발씩 쏘았다. 이들은 가와카미 일본총영사, 모리 궁내부 비서관, 다나카 만철(滿鐵) 이사였다.
안중근은 저격 후 당황한 빛 없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의 러시아어)를 외친 후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시간은 09시 3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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