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일기를 보면 무오사화는 1498.7.1에 연산군이 김일손을 잡아오라고 하여 7.12에 친국을 하고 이후 조사가 신속히 진행되어 7.27에 김일손은 능지처사 당한다. ( 관련자들도 처형, 유배등을 당한다)
이는 사건 시작후 26일, 국문 후 16일만에 마무리가 되었다.
이런 사건의 외형은 무오사화가 상당히 절제된 목표를 가진 정치적 숙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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