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과 변학도
“사또, 만약 누가 옆에서 나랏님을 배반하라 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한 사람과의 약속인 정절을 지키겠다는데 왜 자꾸 나보고 배신하라고 합니까?” 호색한 변학도는 남원부사로 부임하자마자 춘향을 품에 안고자 한다. 춘향은 단호하게 수청을 거부한다.
변학도는 온갖 방법으로 춘향을 회유하였으나 이것이 안 먹히자 폭력을 쓴다. “여봐라, 이 년을 매우 쳐라” 곤장 한 대를 맞은 춘향은 “일편단심으로 일부종사하겠소”라고 대꾸한다. 두 대를 맞자 “불경이부(不更二夫) 이 내 마음. 이 매 맞고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한다.
변사또는 더 세게 치라고 한다. 네 대를 맞자 춘향은 “사또님은 사민공사(四民公事) 하지 않고 위력공사(威力公事) 힘을 쓰니, 남원 백성 원망함을 모르시오”라고 항의한다. 이제 춘향의 대꾸는 개인적 수절에서 사회적 저항으로 번지고 있다. 화난 변사또는 계속 치라고 한다. 곤장 8대를 맞자 그녀는 “팔자 좋은 춘향 몸이 수령 중에 제일 명관 만났구려. 팔도방백 수령님네 치민하러 내려왔지 악형하러 내려왔소”라고 저항한다.
이후 변학도는 춘향에게 무려 25대를 때린다. 이것을 지켜본 남원 백성들, 변사또가 해도 너무 한다고 수군거렸다.
반생반사(半生半死)한 춘향은 절규한다. “여보 사또 들으시오. 계집의 곡(曲)한 마음 오뉴월에 서리치요. 어서 죽여주오. 혼비중천 다니다가 임금님 앞에 나타나서 이 원통함을 알리면 사또인들 무사할까?” 변사또는 크게 당황해 한다. “여봐라 이 년을 큰 칼 씌워 하옥하라” 차디 찬 감옥. 목에 칼이 씌워진 춘향. 그녀는 망부가(望夫歌)를 부른다. 바로 ‘쑥대머리’이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 옥방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보고지고 쑥대머리’
한편, 이도령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온다. 그는 나무 그늘 밑에서 농부들과 막걸리 한 잔 하며 민심을 파악한다. 한 농부가 세상을 비꼰다. ‘원님은 노망이요 아전은 주망(酒妄) 죄인은 도망(逃亡)이고 백성은 원망(怨望)이라’
옆에 있던 농부가 “그래서 우리는 다 사망(死亡)이지 뭐” . 이 말에는 “썩어 문드러진 세상. 차라리 망해버려라”는 자포자기가 들어있다. 춘향 모(母) 월매는 옥에 갇힌 춘향에게 현실과 타협하라고 한다. 그러나 춘향은 단호히 거부한다. 죽더라도 수절하겠다는 것이다. 변사또의 생일잔치가 무르익었을 때 어사 이도령은 시 한 수로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를 꾸짖는다.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라 촉루락시에 민루락이고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금 술잔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 소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구나.’
암행어사 출두(出頭)요! 출두요! 탐관오리들은 혼비백산하였고 변학도는 봉고파직되었다. 춘향은 이도령의 정부인(貞夫人)이 되었다. 판소리 ‘춘향가’는 수청을 강요하는 남원부사 변학도에 맞선 춘향의 수절 이야기이다. 관객들은 암행어사 이도령의 부패척결에 환호하고 대리만족한다.
한편, ‘춘향가’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 농민군의 진군가였다.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봉건시대를 종식하고자 하는 염원이었다. 1930년대 일제 치하에서 명창 임방울은 ‘쑥대머리’를 불러 심금을 울렸다. 1935년에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과 함께 암울한 일제 치하의 자조곡(自嘲曲)이었다.
그런데 지금으로 치면 변학도의 악행은 무슨 죄일까? 직권남용과 강제추행, 그리고 폭행죄이다. 대법원은 약혼자가 있는 여군 대위를 성추행하여 자살로 몰고 간 육군소령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였다. ‘도가니’ 사건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초등학교 교사가 초등학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군대·학교·직장 곳곳에 변학도가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 춘향이 분노할 일이다. <호남역사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