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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칼럼

춘향 김세곤 글

<김세곤칼럼> 춘향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지금 삶에 지친 서민들은 춘향과 이도령 기다리고 있다.

사또, 만약 누가 옆에서 나랏님을 배반하라 하면 어찌하시겠습니까?
한 사람과의 약속인 정절을 지키겠다는데 왜 자꾸 나보고 배신하라고 합니까?

음탕한 변학도는 남원부사로 부임하자마자 춘향을 품에 안고자 한다.  춘향은 단호하게 수청을 거부한다. 


변학도는 여러 차례 회유 하였으나 이것이 안 먹히자 폭력을 쓴다. 직권 남용을 한 것이다. “여봐라, 이 년을 매우 쳐라.” 
곤장 한 대를 맞은 춘향의 대꾸. “일편단심으로 일부종사하겠소.”
두 대를 맞자 “맞아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변사또는 더 세게 치라고 한다. 네 대를 맞자 춘향은 “사또님은 사민공사(四民公事)하지 않고 위력공사(威力公事) 힘을 쓰니, 남원 백성 원망함을 모르시오.”라고 항의한다.

이제 춘향의 대꾸는 개인적 수절에서 사회적 저항으로 번지고 있다.
화난 변사또는 계속 치라고 한다. 곤장 8대를 맞자 그녀는 “팔자 좋은 춘향 몸이 수령 중에 제일 명관 만났구려.  팔도방백 수령님은 치민하러 내려왔지 악형하러 내려왔소.”라고 저항한다.

이후 변학도는 춘향에게 무려 25대의 곤장을 때린다. 이것을 지켜본 남원 백성들. 부사 변학도가 해도 너무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수군거렸다.


반생반사(半生半死)한 춘향. 완전 막보기이다.

“여보 사또 들으시오. 계집의 곡(曲)한 마음 오뉴월에 서리치요. 어서 죽여주오. 죽어서 임금님 앞에 나타나서 사또의 악행을 모두 아뢰겠소.”

이 절규에 변사또는 크게 당황해 한다. ‘여봐라 이 년을 큰 칼 씌워 하옥하라’

차디 찬 감옥에 있는 춘향. 만감이 교차한다. 그녀는 이도령을 향한 망부가(望夫歌)를 부른다. 바로 ‘쑥대머리’이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 옥방 찬 자리요
생각나니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한편 이도령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온다.
그는  나무 그늘 밑에서 농부들과 막걸리 한 잔 한다.
한 농부가 시를 읊는다.
 
원님은 노망이요  아전은 주망 酒妄
죄인은 도망 逃亡이고 백성은 원망이라

옆에 있던 농부가 “그래서 우리는 다 사망이지 뭐.” 이 말에는 “썩어 문드러진 세상. 차라리 망해버려라”는 절망이 들어있다.
 
춘향 모(母) 월매는 옥에 갇힌 춘향에게 현실과 타협하라고 한다. 그러나 춘향은 단호히 거부한다. 죽더라도 수절하겠다는 것이다. 춘향! 지독한 원칙주의자이다. 

변사또의 생일잔치가 무르익었을 때 어사 이도령은 시 한 수로  부패척결을 알린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餚)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락시(燭淚落時)에  민루락(民淚落)이고
가성고처(歌聲高處)에  원성고(怨聲高)라
 
금 술잔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 소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구나.

암행어사 출두(出頭)요!  출두요!
 
판소리 ‘춘향가’는 수청을 강요하는 남원부사 변학도에 맞선 춘향의 수절 이야기이다.  관객들은 클라이맥스 암행어사 이도령의 부패척결에환호하고 대리만족 한다. 

한편 ‘춘향가’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 농민군의 진군가였다.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봉건시대를 종식하고자 하는 염원이었다.

옥중 망부가 ‘쑥대머리’는 1930년대 일제 치하에서 명창 임방울이 소리하여 조선 백성의 심금을 울렸다. 1935년에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과 함께 앞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자조곡(自嘲曲)이었다.
   
지금 삶에 너무 지친 서민 庶民들은 춘향과 이도령을 기다리고 있다. 
암행어사 출두요!  출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