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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왜 징비록인가? 김세곤 칼럼 남도일보

김세곤 칼럼-왜 ‘징비록’인가?

오치남 기자  |  ocn@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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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24  15: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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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징비록’인가?

KBS 대하사극 ‘징비록(懲毖錄)’이 흥미를 더하고 있다. ‘징비록’은 영의정이자 도체찰사 류성룡(1542~1607)이 남긴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솔직한 고백과 통렬한 반성의 기록이다. ‘징비’란 “내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뒤에 근심이 있을까 삼간다.”는 ‘시경’의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드라마 ‘징비록’은 기존의 임진왜란 드라마와는 달리 정치· 외교· 전쟁 등 총체적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조명하고 있다.
초반 4회를 보면서 느낀 점은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이다. 조선은 지피에 실패하였다. 첩보전에서 일본에게 졌다.
일본 사신으로 조선에 온 승려 현소가 조선 지형을 샅샅이 파악하여 지도를 만든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최첨단무기인 비격진천뢰 도면이 일본 측 고정간첩에게 유출된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조선의 군사력에 대한 분석 또한 예리하다. 일본은 자신의 약점인 수군의 대항마인 조선수군의 전력을 탐색하기 위하여 1587년에 고흥의 손죽도에 왜구를 침투시켜 조선 수군을 몰살시켰다. 다만 고니시가 간과한 것은 1591년 2월에 여수로 부임한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존재였다.
그러면 조선은 일본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었나? 한마디로 조선은 16세기 일본에 대하여 거의 몰랐다. 일본을 야만국으로 멸시하였을 뿐 무사의 나라 일본에 대하여 무지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조선은 1590년 3월에 통신사를 일본에 보낸다. 대표단은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 무관 황진이었다. 이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단 한 차례 접견하였다. 히데요시를 만난 황윤길과 허성, 황진은 섬뜩하였고, 김성일은 무례함에 불쾌해 하였다.
1591년 3월에 귀국한 조선통신사 일행은 엇갈린 정세보고를 하였다. 정사 황윤길은 선조에게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아뢰었다. 그런데 부사 김성일의 의견은 딴판이었다. “그러한 정세를 발견하지도 느끼지도 못하였습니다. 인심을 동요시키는 황윤길의 말은 옳지 못하다고 사료됩니다.”라고 아뢴 것이다.

 선조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묻자,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력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하다.”고 아뢰었다. 그런데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라고 말하였다.
선조를 만나고 나온 김성일에게 류성룡이 물었다.
“그대의 말은 황윤길의 말과 전혀 다른데, 만일 병화가 있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김성일이 답하기를, “나 역시 왜적이 군사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겠습니까. 다만 황윤길의 말이 너무 지나쳐 온 나라가 놀라고 당황할 것 같아 그것이 염려되어 그랬을 따름입니다.”
이러한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는 ‘선조수정실록’과 ‘징비록’에 실려 있다.

그런데 결정권자인 국왕 선조는 김성일의 말을 믿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결론 냈다. 선조는 무비(無備)를 택하여 백성을 참화에 빠뜨린 것이다.
한편,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조선은 지피할 줄 몰랐다. 명나라의 은혜에는 감사하고 청나라의 발흥(勃興)에 대하여는 무시하였다. 그 결과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참담한 고통은 30여 년 뒤 병자호란에서 반복되었다.
인조의 굴욕이후에도 효종은 북벌론을 외쳤고, 조선은 유명조선 (有明朝鮮)하면서 ‘소중화(小中華)’를 자부하였다. 쇄국의 덫에 갇혀 세상을 너무 몰랐다.

반면에 가해자 일본은 피해자 조선보다 더 징비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이겼다. 러일전쟁 영웅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을 존경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일본은 1905년에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못 다한 꿈을 이룬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역사를 냉철하게 징비하고 있는가? 세상을 제대로 지피하고 있나?
<호남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