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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을사늑약 110주년이다. 1905년 11월 18일 오전 1시 반에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였다. 그런데 을사늑약 전말을 살펴보면 고종과 대신들이 얼마나 나약하였고, 매국노 이완용이 얼마나 교활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1905년 9월 5일 미국 포츠머스에서 러시아는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였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대한제국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11월 2일에 메이지 천황은 이토 히로부미를 특파대사로 임명하고 서울로 보냈다. 11월10일에 이토는 고종을 접견하여 천황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친서의 핵심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이겨 평화를 회복하게 되었으나, 이를 항구히 하기 위하여 두 제국간의 결합을 한층 공고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15일에 이토는 고종을 단독 면담하고 조약안을 내놓았다. 고종은 거절의사를 분명히 못한 채 대신들과 상의하여 결정하겠다고 말하였다. 16일에 이토는 정부대신들을 손탁호텔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이토는 동양평화 운운하며 조약 체결의 필요성을 강권하였다. 이때 이완용은 ‘오늘의 동아 형세를 살펴볼 때에 어쩔 수 없다’고 발언하였다. 17일 11시에 참정대신 한규설 등 대신 8명이 일본 공사관에 불려갔다. 일본공사 하야시가 조약안을 검토하자고 하자,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지금 당장 의결할 수 없다고 발언하였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하야시는 오후 3시쯤에 대신들을 이끌고 덕수궁으로 향했다. 고종은 오후 4시부터 어전회의를 열었다. 대신들은 조약은 절대로 불가하다고 아뢰었고, 고종은 일단 조약 체결을 미루자고 했다. 이때 이완용이 긴급발언을 하였다. ‘어쩔 수 없이 조약체결을 하게 되는 경우를 고려하여 조약안 중에서 수정할 사항을 논의하자’고 아뢰었다. 고종은 이완용의 말에 동의하였다. 대신들은 조약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회의 끝에 대신들은 고종 앞에서 일제히 아뢰었다. “이상 아뢴 것은 실로 미리 대책을 강구하는 준비에 불과할 뿐입니다. 신(臣)들이 이토 대사를 만나서는 한 마디로 거절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하야시가 한규설에게 회의결과를 물었다. 한규설은 “폐하는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뜻으로 지시하셨으나, 대신들은 모두 반대하는 뜻으로 거듭 말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8시쯤에 이토가 황급히 조선주둔군 사령관 등을 거느리고 덕수궁에 도착하였다. 이미 대궐 안팎은 중무장한 일본군이 겹겹이 포위하여 공포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이토는 고종에게 알현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고종은 “대신들에게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고 하였고, 지금 후두부에 종기가 생겨 접견할 수 없으니 대사가 중간에 서서 타협의 방도를 강구해주기 바란다”고 전갈하였다. 이토는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8명의 대신들을 일일이 호명해 가며 찬성과 반대를 물었다. 맨 먼저 참정대신 한규설에게 묻자, 그는 반대를 분명히 하였다. 다음 차례인 외부대신 박제순은 “외부대신으로서 어찌 찬성할 것인가? 그러나 명령이라면 어찌할 수 없지 않는가”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이에 이토는 찬성이라고 못 박았다. 탁지부대신 민영기와 법부대신 이하영은 반대라고 답변하였다. 다음으로 이토가 학부대신 이완용에게 묻자, 이완용은 “이번 일본의 요구는 대세상 부득이한 것이다. 일본은 더 이상 동양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없어 이번 요구를 제기하였다. 반드시 목적을 관철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진대 원만히 타협하여 일본의 제의를 수용하고 우리의 요구도 관철하는 것이 좋다.” 이완용은 어전회의에서 대신들이 결의한 사항을 뒤집었다. 대세, 국력 운운하며 괴변을 하였다. 이완용의 말이 끝나자 이토는 “조약 중에 고칠 만한 곳은 고치면 되니, 완전 동의로 인정하겠소” 라며 만족감을 표시하였다. 이어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군부대신 이근택과 내부대신 이지용은 “나도 학부대신 이완용과 같은 뜻”이라고 대답하였다. 을사오적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토는 다수결로 가결이 되었다고 하면서 회의를 종결하였다. 이후 이토는 외부대신의 직인을 탈취하여 조약에 날인했다. 이로써 대한제국은 사실상 망하였고 친일파 이완용은 출세가 보장되었다. < 호남역사연구원장> <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