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입니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호남 땅은 나라의 울타리입니다/만약 호남이 없으면 곧바로 나라가 없어질 것입니다/그래서 어제 한산도로 진을 옮겨 바닷길을 가로막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있는 ‘충무공 이야기’ 전시관에서 이 글을 보았다. 이 글은 1593년 7월 16일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친구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쓴 편지 중 일부다.
명량대첩 4D 영화도 감상했다.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요, 살려고 전투를 회피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13척 대 133척의 싸움에서 이긴 울돌목 해전.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감동이 왔다. 호남 사람이라는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주말에는 자주 역사 현장을 다닌다. 지난 몇 주 동안 해남 울돌목, 행주산성, 진주성과 남해를 답사했다. 진도대교 아래 물살은 여전히 울음이 운다. 명량대첩비도 해남 충무사에서 원래 자리인 해남우수영으로 옮겨져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행주산성은 행주대첩 체험장이다. 입구에 있는 청동 부조에는 1593년 2월12일 행주대첩은 권율이 이끄는 전라도 관군과 의병, 승군과 행주치마를 두른 부녀자들의 총력전이었다고 새겨져 있다.
충의정에서 ‘권율과 행주대첩’ 영화를 보았다. 권율은 광주에서 의병을 모아 이치전투에서 왜적을 막았고, 광주공원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는 설명이 영화에 나온다. 그리고 보니 권율이 광주목사에서 전라도 순찰사로, 도원수로 승진한 것은 전라도 사람들 덕분이다.
민족사의 공간 진주성도 찾았다. 진주성에는 임진왜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1592년 10월 초 김시민의 진주대첩, 1593년 6월의 제2차 진주성 싸움, 그리고 푸른 남강에 몸을 던진 의기 논개.
매표소 입구에 세워진 수주 변영로의 ‘논개’ 시비 詩碑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고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가슴이 뭉클하다.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에서 아래 글을 읽었다. 곰씹으니 참으로 의미가 깊다.
‘경상우도와 호남은 입과 입술의 관계이어서 경상우도가 없으면 호남이 없고, 호남이 없으면 나라의 앞날은 가망이 없었다.’
국립진주박물관 앞에 전시된 화차 모형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변이중이 만든 것이다. 한 유치원생이 어머니의 설명을 듣고는 백발백중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유치원생이 기특하여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광주에서 왔단다. 빛고을 광주.
창렬사 사당에는 김시민, 김천일, 황진, 최경회, 고종후, 장윤, 양산숙 등의 신위가 모시어져 있다. 이들 대부분은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한 호남의 의병장들이다. 명군과 관군도 포기한 진주성을 열흘간이나 사수하다 죽은 전라도 의병들. 이런 악착에 질려서 왜군은 승리하였으나 호남 공략을 포기하고 만다.
지금도 진주 시민들은 호남의 의인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진주의 지식인들이 나주 정렬사를 방문하면 김천일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단다. 그런데 정작 전라도 사람들은 김천일을 추모하고 있는가?
내친김에 남해대교를 들렀다. 이 근처가 바로 임진왜란의 마지막 싸움 노량해전이 일어난 곳이다. 이순신은 완도 고금도에서 전라도 수군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왜군을 끝까지 쫓았다. 충렬사에는 이순신의 가묘가 있다. 조금 더 가니 관음포 앞바다이고 이순신의 시신이 처음 모시어진 이락사(李落祠)가 있다. 이씨 성을 가진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진 것을 추모하는 사당.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라’고 적힌 빗 돌 앞에서는 그만 숙연해진다.
답사를 하는 동안 내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생각하였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작업이다. 역사적 진실을 탐구하여 삶에 유익함을 주는 학문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하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 적혀 있는 글귀가 그 답을 준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다시 한 번 그 역사에 얽매이게 된다’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역사 공부는 그냥 책에서 배우고 학교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삶에서 배우고 역사 현장에서 느끼는 열린 공부이어야 한다. 진주성에 만난 어린아이처럼 어릴 때부터 역사 유적을 다니면서 호남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진실로 ‘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 시무국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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