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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칼럼

공직자여 여유와 지지를 , 김세곤 무등일보 2014. 9.15

기고- 공직자여, 여유 與猶와 지지 知止를
입력시간 : 2014. 09.15. 00:00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연일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이 뉴스거리다. 얼마 전에 제주지검장이 공연음란죄로 체포되고 국회의원 세 명이 뇌물과 입법 로비로 구속되더니, 이번에는 육군 1군 사령관이 만취 추태로 전역하는 군대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였고 현직 판사가 성추행 혐의로 조사 받는 일이 일어났다.

입법부, 사법부, 검찰, 군대를 막론하고 고위 공직자들이 왜 이렇게 일탈하고 있는지, 자기 처신을 제대로 못하는 지 정말 안타깝다.

몇 달 전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다산 생가를 갔다. 다산 서재 ‘여유당(與猶堂)’에서 공직자의 자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약용은 1800년 여름에 정조 임금이 승하하자 고향인 남양주 능내면 마재마을로 내려와 자신의 거실을 여유당이라 이름하고 '여유당기'를 지었다.

노자는 ‘여與 여! 머뭇거림은 마치 살 언 겨울 냇가를 건너는 것 같고, 유 猶여! 신중함은 마치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경계하는 것 같도다 與呵其若冬涉水 猶呵其若畏四隣’ 라고 말하였다.

안타까워라. 이 두 마디 말이 내 약점의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여유 與猶’는 노자 '도덕경' 제15장에 나오는 글귀다. 넉넉하게 여유 餘裕롭게 살자는 의미나 즐기면서 여행 旅遊 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경구 警句다.

그런데 요즘 공직자는 여유 與猶를 잊고 사는 듯하다. 사방에 적이 있고 민심이 분노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너무 모르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이후 시민들은 더욱 강한 고발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제주지검장이 대로변에서 한 일이 공연음란으로 밝혀진 것도 여고생의 고발과 CCTV 때문이다. 여고생의 112 신고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아예 드러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CCTV가 아니었다면 진실이 그리 빨리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육군 1군 사령관이 불명예 전역하게 된 것도 자기 처신을 잘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 해외순방기간 중인 6월 하순에 모교를 방문하여 안보강연을 한 뒤 고교 동창들과 식사하면서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한다. 부대복귀 중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는데 대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이 크게 흐트러졌고, 군화는 한쪽만 신고 한쪽은 벗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보좌관의 과잉 조치에서 터졌다. 보좌관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다른 사람들의 화장실 출입을 막아 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실랑이가 빚어졌고 시민들은 화가 나서 경찰에 제보하였다. 나중에 야당 국회의원도 알게 되어 일파만파가 일어났다. 한 마디로 신중하지 못한 몸가짐으로 별 네 개가 우수수 떨어진 것이다.

현직 판사의 성추행 혐의도 마찬가지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명문 법대 출신의 20대의 판사는 작년 가을에 서울에서, 올해 7월에는 대구에서 대학 동아리 후배 여대생 두 명을 잇따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제 세상이 변하였다. 민심은 공직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사방에 감시의 눈이 있다. 부정부패한 공직자를 목격하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 촬영을 하여 곧바로 SNS에 올린다. 아울러 관계기관에 고발하고 반드시 그 결과를 확인한다. 그만큼 시민정신이 투철해졌다.

성희롱이나 추행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성문제에 너그럽지 않다.

공직자 여러분 몸조심 하시오. 금년에는 정부의 부패 척결 활동이 더 심할 것이다.

노자 '도덕경' 제44장에는 이런 글이 있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나니

그러면 오래 갈 수 있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 長久

상품권 몇 장에 몇 십 년 공들여 쌓아놓은 명예를 한 번에 무너뜨리지 말고 멈출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공직자여, 여유 與猶와 지지 知止를 !


무등일보 zmd@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