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만필> 윤근수 지음 - 탁영 김일손의 일화
○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은 집이 청도(淸道)에 있었으니, 청도는 곧 경상북도였다. 탁영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 경상북도의 향시에는 언제나 장원이었다. 같은 시기에 경상남도에서는 권홍(權弘)이 여러 번 장원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알지는 못하였다. 회시에 응시하기 위해 두 사람 다 서울에 왔다. 하루는 권홍이 탁영을 찾아왔다. 탁영은 허겁지겁 나가 맞아서 윗자리에 안내하여 앉히고 물었다.
“그대는 향시 때마다 늘 장원만 하니, 무슨 책들을 읽어서 그처럼 문장이 훌륭합니까?”
하니, 홍은 대답하기를,
“딴 책은 별로 공부한 것이 없고 《통송(通宋)》만 숙독했을 뿐입니다.” 고 하였다. 탁영은 즉시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워서 업신여기는 태도를 보이고 다시는 손님의 대접을 하지 않았다.
탁영이 한번은 별과에 응시하였다. 그의 두 형인 준손(駿孫)ㆍ기손(驥孫)은 탁영의 손을 빌어서 탁영과 함께 모두 초시에 합격하였다. 전시의 날이 되어, 탁영은 두 형님의 책문만 대신 지어주고, 자기의 것은 짓지 않았다. 대개 그의 형님에게 장원을 양보하고 자기는 다음 과거 때 장원하려는 속셈이었다. 두 형님이 모두 과거에 올랐으며, 준손은 1등이 되었다. 다음 과거 때 전시의 시험관이 마음속으로는 탁영의 문장이 훌륭함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꺼려서 2등에 눌러 두었으므로 민첩(閔怗)이 곧 1등이 되었다. 탁영은 듣고 분이 나 말하기를,
“민첩은 어떠한 사람이냐?”
하고 통한해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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