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김씨 삼현파 : 김극일 김일손 김대유
김극일(金克一) 효자(孝子)
○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타고난 성품이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종기 고름을 입으로 빨았으며, 아버지의 이질 걸린 대변을 맛보았다. 6년 동안을 시묘(侍墓)하는데 범이 옆에서 새끼를 젖먹이거늘, 제사지낸 나머지 음식을 먹여 마치 가축을 기르듯이 하였다. 아버지에게 천첩(賤妾) 두 사람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섬기었으므로 천순(天順) 갑신년에 정문을 세웠다.
○ 처사(處士) 김극일(金克一)이 어머니가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거의 사경에 이르렀다. 집에서 30리나 떨어져 있는 곳에 장사지내고, 그 곁에 여막(盧幕)을 짓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메를 올린 뒤에 반드시 짚신을 신고 아버지에게 걸어 와서 뵈웠다. 비록 추운 겨울이나 덥고 비가 올 때에도 끝내 조금도 게을리하지를 않았다. 〈효문명(孝門銘)〉
○ 아버지를 위하여 대변을 맛본 것은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여 창자가 헐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여 그릇에 담아 땅에 묻었다가 꺼내어 맛보니 틀림없이 위독하였다. 죽으매 몹시 슬퍼하여 예법에 지나치게 하였다. 동상
○ 어려서부터 지극한 성품을 지녀 만년에는 동네 사람들과 친목계를 만들었는데 모든 언짢은 일에는 서로 돕고 관혼(冠婚)은 서로 기뻐하고, 봄 가을 길일(吉日)에 모여서 즐겁게 놀되 모두 규약이 있었다. 마을 친구의 상사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정분에 따라 부의(賻儀)를 차등있게 하고 또 그 남은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동상
○ 성품이 평안하고 고요하며, 벼슬하기를 원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백의(白衣)로 몸을 마치었다. 날마다 한 방을 깨끗이 쓸고 의관을 바로하고 단정히 앉아 《소학(小學)》을 읽었으며, 제자를 가르치되 반드시 장공예(張公藝)를 칭찬하면서 이름을 들어 권면하였다. 상동
'김일손의 후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동잡록에 나오는 탁영 김일손 프로필.. 후손 김세곤 (0) | 2014.08.17 |
---|---|
김종직의 조의제문 - 무오사화의 단초... 연산군 일기 1598년 7월17일 , (0) | 2014.08.15 |
탁영 김일손의 자계서원, 경북 청도군 (0) | 2014.08.15 |
[스크랩] 김일손 장인 김미손(예안김씨) (0) | 2014.03.24 |
[스크랩] 탁영(濯纓)김일손(金馹孫)과 淸道地域 儒敎文化 (0) | 2014.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