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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당 송흠 연재

청백리 송흠, 장성군 청렴 체험, 김세곤 글

연려실 기술

 

중종 조 명신

 

송흠(宋欽)

 

송흠은, 자는 흠지(欽之)이며, 호는 지지당(知止堂)이요,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기묘년에 태어나서 경자년에 사마시에 뽑혔고, 성종 임자년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판중추에 이르렀다. 기사에 들고 청백리로 뽑혔다. 시호는 효헌공(孝憲公)이고 나이 90세에 죽었다.

 

○ 청백하고 검소하고 벼슬에 욕심이 없음이 조원기(趙元紀)와 같았고, 여러 번 1품 품계에 올랐다.

 

○ 공이 매양 지방에 수령으로 부임할 때에 신영(新迎)하는 말(馬)이 겨우 세 필 밖에 안 되었다. 공이 타는 말이 한 필이고,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각각 한 필씩 탔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삼마태수(三馬太守)’라고 불렀다.

 

여산 군수(礪山郡守)가 되었을 때, 고을이 큰 길 옆이어서 손님은 많은데 대접할 것이 없어, 특별한 방법으로 술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호산춘(壺山春)’이라 했다. 〈행장〉

 

 

정약용의 목민심서 율기 육조에도  이  삼마태수 이야기가 있다. 단촐하게 부임하는 송흠은  목민관의 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