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노래, 한의 노래를 관광상품화 하자
남도를 대표하는 소리꾼은 누구일까. 단연 임방울과 이난영이다.
임방울은 ‘쑥대머리’로 명창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1929년 경제 대공황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반은 무려 120만장이나 팔렸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또한 마찬가지이다. 1935년 일제 치하에서 희망이 아예 보이지 않던 시절에 이 노래는 500만장이나 팔렸다.
무엇이 이렇게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까. 그것은 한 恨을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옥에 갇혀 죽을 시간만 기다리는 춘향의 모습에서, 가물거리는 사공의 뱃노래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처지와 같은 한을 느꼈다. 노래와 자신의 절망과 체념이 함께 섞이었다. 한편으로는 한의 노래에서 다시 살고자 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찾았다. 한 많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면서 내가 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러면서 나의 삶이 ‘이보다 더 힘들지는 않겠지’하는 위안을 얻은 것이다.
이런 한의 노래가 남도에 또 있을까. 바로 ‘부용산’ 노래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 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해방이후 목포에서 만들어졌다는 이 노래는 누이를 부용산에 묻고서,어린 여학생을 저 세상으로 보낸 만가이다. 작사자 작곡가도 누구인지 모른 채 남도 땅 아랫녘에서 유행한 슬픈 이 노래가 6.25 전쟁 때에는 빨치산의 노래가 되었고, 70-80년대는 쫒기는 민주운동가들의 한탄의 노래가 되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시기에 탄생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대표곡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 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 소리쳐도 끝없는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이 노래야 말로 한을 힘찬 생명력으로 승화시킨 선동적 민중가요이다. 1982년 5.18 묘역에서 가진 윤상원, 박기순 부부의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불려진 이 노래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수없이 불리고 불리어 졌다.
이러한 남도의 노래, 한의 노래는 좋은 관광 상품이다. 경제가 너무 어려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선에 이 노래를 CD로 만들어 남도를 찾는 관광객에게 버스에서 들려주면서 에피소드도 이야기하고 CD도 팔자.
또한 남도 노래기행을 관광 상품화하자. 임방울의 흔적을 찾아서 광산 송정공원, 광산문화원, 광주문화예술회관을 가보고. 이난영을 만나러 목포 유달산, 문예예술회관, 이난영 공원을 가보자. 목포여고, 벌교 부용산에서 ‘부용산’ 노래를 부르고, 광산구의 윤상원 생가와 518 민주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불러보자.
더 나아가서 이미 만들어진 임방울 국극, 뮤지컬 난영, 부용산 연극을 더욱 활성화 시키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들자.
남도의 노래, 한의 노래는 정말 좋은 관광 상품이다. 그 노래에 얽힌 사연이 너무나 많아 충분히 관광자원이 되고 스토리텔링이 된다. 특히 40대 이상 세대들에게 이 관광 상품은 다시 한번 향수를 불러일으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다.
송정공원의 임방울 노래비
전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윤상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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