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향 남도 답사를 하자.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독도 표기문제로 일본과 감정이 격화되어 있는 참에 북경 올림픽 야구에서 한국이 일본을 두 번이나 이긴 것은 정말 통쾌한 일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아 온 우리는 유난히도 일본만은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여 보면 우리는 먹고 사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역사의 교훈을 잊고 산다. 왜 우리는 임진왜란을 치렀으며, 일제에게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하였는지, 우리의 선현들은 어떻게 애국 ․ 호국하였고 순절하였는지를 일상에서는 잊는다.
작년에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하였을 때 역사박물관 입구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다시 한번 그 역사에 얽매이게 된다.” 아픈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여야 다시 그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교훈 같아서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것은 역사 현장을 돌아보는 일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이런 역사 현장이 많은 곳이 바로 남도이다. 의향 남도에는 임진왜란에서부터 시작하여 구한말, 일제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임진왜란의 흔적은 이순신 장군의 길, 의병과 승병의 길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길은 전라좌수영이 있었던 여수 진남관, 12척의 배로 133여척의 일본 수군을 물리친 명량대첩의 현장 해남 혹은 진도의 을돌목, 목포 유달산 노적봉과 고하도, 거북선을 만들었던 여수 선소와 거북선을 제작한 나주출신 나대용 장군 ,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인기를 끈 영암의 김완 장군 사적지, 그리고 여수 충민사 ․ 오충사로 이어진다.
의병의 길은 고경명, 김덕령, 김천일, 최경회등의 의병장들이 걸었던 길이다. 이들은 광주와 담양, 나주, 화순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광주 포충사, 충장사, 나주 정렬사, 화순 최경회 사당이 그들을 모신 곳이다. 특히 60세 고령이었던 고경명은 1592년 금산 전투에서 전사를 하였고, 김천일 ․ 의기 義妓 논개의 지아비이기도 한 최경회 ․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는 1593년 6월에 6만 명의 왜군에 대항하여 2만여명의 전라도 백성들과 함께 진주성에서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한편 승병의 길에는 서산대사, 사명당, 영규등 승병들의 활동을 기린 해남 대흥사 경내의 표충사와 서산대사 유물관, 그리고 이순신 장군을 도운 수군 승병의 거처인 여수 흥국사, 석천사가 있다.
구한말 때는 어떠한가. 신안 흑산도, 가거도에는 대마도에서 순절한 최익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고, 구례 연곡사는 고경명의 후손 고광순의 순국 현장이며, 구례 매천사는 붓으로 나마 나라를 구하려 하였으나 그러지 못해 자결한 조선의 마지막 선비 황현의 충혼이 서린 곳이다.
이런 충의의 맥은 일제시대로 이어진다. 나주에서 광주로 가는 통학 기차에서 조선 여학생을 희롱하는 일본 학생들에 대한 항의가 발단이 된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그것이다. 현재 광주일고 자리가 바로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이다.
남도는 이렇게 충의와 애국, 호국의 고향이다. 이런 의향 남도를 남도의 지식인들, 문화예술인들, 학생들부터 답사를 하자. 이 역사의 현장에서 의롭게 살다간 우리 선조들의 충혼을 다시금 느껴 보자.
(2008. 8. 26 전남일보에 기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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