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의 독일 슈테델 미술관 기행 [41회]
- 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5.06.16 14:05
현대화가 전시실에서 다음으로 본 그림은 오토 뮐러와 카를 슈미트 로틀루프 작품이다. 뮐러 그림은 전시실 왼편에, 로틀루프 그림은 오른편에 전시되어 있다.

먼저 카를 슈미트 로틀루프(1884∽1976) 그림을 감상한다. 제목은 ‘공원의 붉은 탑’이고, 1910년 작품이다..

그는 1910년에 드레스덴에서 이 그림을 그렸는데 팔레트 나이프를 이용한 두꺼운 터치가 특징이다. 탑의 벽은 아예 붉은 원색으로 칠해져 있고, 공원의 꽃과 나무들도 강렬한 색채이다.
카를 슈미트 로틀루프는 1884년에 작센지방의 로틀루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에 드레스덴에 가서 처음에는 건축을 공부했는데 키르히너와 헤켈을 만나면서 다리파에 참여했다. 1905년에 카를 슈미트는 다른 작가와 자신을 구별하기 위하여 자신의 성(姓) 옆에 태어난 도시의 이름을 붙여서 서명했다.
그는 다리파 활동에 적극적이었으며 1909년의 <다리파 앨범>에는 로틀루프의 그림이 집중적으로 조명되었다.
1911년에 노르웨이에서 여름을 보낸 후 베를린으로 이사한 그는 이곳에서 오토 뮐러와 라이오넬 파이닝어(1871∽1956)를 알게 되었다. 로틀루프는 파이닝어에게 입체파(cubism) 미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매우 놀랐다. 또한 뭉크의 그림을 연구했고 아프리카 미술에도 관심을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동부전선에 배치되었고,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하였다.
1931년에 그는 베를린 미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임명되었지만 1933년에 정권을 잡은 히틀러의 나치당은 로틀루프를 박해하였고, 그의 작품들은 파괴되고 '퇴폐미술'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41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금지되었고, 악명 높은 친위대로부터 감시까지 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그는 베를린 미술학교에서 교수로 지낼 수 있었다.
다음은 오토 뮐러(1874~1930)의 그림이다. 그림 제목은 ‘아담과 이브’ 이고 1913-1922년 사이에 그렸다. 배경인 에덴동산은 원시림인데 뮐러의 이상향이다. 그림은 단순하고 즉흥적인데, 아담과 이브는 나체 상태이다. 왼편의 아담은 이브를 쳐다보고 있고, 말라 보이는 이브는 벌거벗은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며 한 손으로 음부를 가리고 있다.

뮐러는 1874년에 실레지아 리바우(지금의 폴란드)에서 테어났는데 그의 그의 어머니가 집시(보헤미안)였다. 그는 1890년부터 1894년까지 괴를리츠에서 석판화를 공부했다. 1896년에 그는 드레스덴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1899년부터 1908년까지 이탈리아·스위스·독일을 여행했다. 그는 베를린에서 키르히너와 로틀루프, 헤켈을 만나 ‘다리파’에 합류하였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의용군으로 참전한 그는 1916년에 폐를 다치게 되었다. 이후 1919년부터 1930년 죽을 때까지 폴란드 블레슬라우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강의했다.
그의 사후(死後)인 1937년에 나치는 그의 작품을 여러 미술관에서 떼어내고 ‘퇴폐미술전’에 그의 그림을 전시했다.
뮐러의 화풍은 처음에는 이집트 회화에서, 나중에는 고갱에게 영감을 받았다. 1919년 이후 그는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원시적인 순진성’을 추구하여 평생 집시 생활을 테마로 삼았다.
그 밖에도 낙원적 · 몽상적인 풍경 속의 누드 소녀 등을 그렸는데, 모가 난 느낌을 주지만 독일 표현주의 다른 화가들처럼 가시 돋친 듯한 느낌은 없고, 오히려 장식적인 서정미가 있는 것이 특색이다.
< 참고문헌 >
o 가브리엘레 크레팔디 지음 · 최병진 옮김, 표현주의 화가들. 마로니에 북스, 2009
o 노르베르트 볼프 지음 · 김소연 옮김, 표현주의, 마로니에북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