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김세곤의 반(反)부패] 목민심서톺아보기(21)- 제2부 율기6조 제2조 청심(淸心) (11)

김세곤 2025. 6. 11. 03:11

[김세곤의 반(反)부패] 목민심서톺아보기(21)- 제2부 율기6조 제2조 청심(淸心) (11) 

  • 기자명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청렴연수원 등록 청렴 전문강사)  
  • 입력 2025.06.0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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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청렴연수원 등록 청렴 전문강사)  

 『목민심서』 「율기(律己) 6조」 ‘제2조 청심(淸心)’ 읽기를 계속한다. 

「무릇 본읍(本邑)에서 나오는 진귀한 물건은 반드시 고을에 폐단이 될 것이니, 하나도 안 가지고 돌아가야만 청렴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합포(合浦)에서는 진주(珍珠)가 나는데, 수령 되는 사람이 부패하고 탐욕스러워 사람을 속여서 진주를 채취해 가니, 진주가 점점 교지군(交趾郡) 군계까지 옮아가 버렸다. 그래서 행려(行旅 나그네와 상인)가 오지 않고 사람과 물건이 힘입을 데가 없게 되었다. 후한 환제(後漢桓帝) 때 관리인 맹상(孟嘗)이 합포태수(合浦太守)가 되어 이전의 폐단을 고쳐 없앴다.  그러자 1년도 채 못 되어 전에 없어졌던 진주가 다시 돌아오고 상인도 왕래하니, 사람들이 맹상을 신명(神明)이라고 일컬었다.

 유자후(柳子厚)가 연주자사(連州刺史) 최군민(崔君敏)을 위하여 지은  「영릉복유혈기(零陵復乳穴記)」에 다음 글이 있다.

“연주(連州)는 석종유(石鍾乳)가 나는 곳이다. 연주 백성들이 이제 다 없어졌다고 보고한 지도 5년이나 되었고, 공물(貢物)은 다른 부(部)에서  사다 바쳤다. 자사(刺史) 최공(崔公)이 부임한 지 한 달이 넘자 석종유를 채취하는 사람이 와서 석종유가 다시 나온다고 고(告)하였다. 그러고는 지난번 자사가 탐욕스럽고 사나워서 부역만 시키고 값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괴로워서 나오지 않는다고 속였던 것이며, 이번 자사(刺史)는 법령이 밝고 뜻이 깨끗하며 신의가 흡족하기 때문에 성심으로 아뢴 것이라고 하였다.”

 
 

(유자후는 당나라 유종원(柳宗元 773∽819)으로 자(字)가 자후이다. 영주사마(永州司馬)에서 유주자사(柳州刺史)로 나갔으므로 유유주(柳柳州)라 부른다. 그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였는데 문장이 한유(韓愈 768∽824)와 비등하였다.) 

송나라의 여정(余靖)이 이광(二廣 광동 廣東과 광서 廣西)의 경략(經略)ㆍ안무사(按撫使)로 군무를 맡아 볼 때, 법을 만들어 관리들을 경계해서 남방의 약품을 팔 수 없게 하기를 청하였다. 공이 북으로 돌아 갈 때에는 남해(南海)의 물건은 하나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남조(南朝) 양무제(梁武帝) 때 왕승유(王僧孺)가 남해태수(南海太守)가  되었는데, 외국에서 배로 온 물건은 결코 갖는 일이 없었다.  그는 “옛사람은 촉(蜀) 땅의 장사(長史)가 되었는데도 평생토록 촉 땅의 물건을 갖지 않았다. 나는 자손들에게 남방의 물건을 가지지 못하도록 유언을 남기고 싶다.”고 말하였다.

당나라의 주경칙(朱敬則)이 부주자사(涪州刺史)로 좌천되었다. 돌아올 때 회남(淮南) 물건은 하나도 없었고, 타는 것은 말 한 필 뿐이어서 아들 들은 걸어서 따라왔다.

( 『당서(唐書)』에는 “시어사(侍御史) 염조옹(冉祖雍)의 무고로 주경칙이 부주자사(涪州刺史)로 좌천되었다가 무죄가 밝혀져 여주 자사(廬州刺史)로 임명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사의(董士毅)가 촉주(蜀州)의 수령이 되어 부임할 때 여러 자제(子弟)들이  청하였다.

“아버님의 지절(志節)은 저희들도 다 잘 아는 일이니 일체 생계(生計)에 대해서는 조금도 넘보지 않습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아버님께서는 연세가 많으시고, 촉 땅에는 좋은 재목이 많으니 노후(老後)의 일을 대비하시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이러자 공이 “잘 알겠다.”고 말했다. 

동사의가 벼슬을 마치고 돌아올 때 자제들이 마중하러  강가에 나와서 노후의 일에 관해 물으니, 공은 “내가 듣건대 전나무는 잣나무만 못하다 하더라.”고 말하였다. 자제들이, “아버님께서 마련하신 것이 잣나무이십니까?”하자, 공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여기에 싣고 온 것은 잣씨이니 심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