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의 후손들

김일손 만시 - 남곤의 추도시 , 후손 김세곤

김세곤 2014. 8. 20. 05:43

남곤의 추도시[편집]

남곤은 그의 동문이자 친구였으며 같은 스승 김종직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무오사화로 죽임을 당한 탁영(濯纓) 김일손의 묘를 중종반정 후 이장할 때 남곤은 글을 지어 "공(公)은 참으로 세상에 드문 재주요 묘당(廟堂)의 그릇이었다. 소장(疎章)과 차자(箚子)의 문장이 넓고 깊음이 큰 바다와 같았고, 인물은 시비하고 국사를 논함이 마치 청천백일(靑天白日) 같았다. 애석(哀惜)하도다 연산군이 어찌 차마 그를 거리에 내놓고 죽였는가, 공은 실로 세상에 드문 선비였다. 불행한 때를 만나 화(禍)를 입고 죽었구나" 하고 애석해 하면서 만시(輓詩)를 지었다.

귀신(鬼神)은 아득하고 어두운데 천도는 진실로 알기도 어렵구나.

귀신도 천도는 좋아하고 미워함이 인간과는 달라 화와 복을 항상 거꾸로 베푸나니,

길고 긴 이 우주(宇宙)에 오래 사나 짧게 사나 하루살이와 같은 것이라.

촉루의 즐거움이 인간 의 임금보다 나은지 어찌알랴,

달관으로 한 웃음에 부치니 뜬 구름처럼 아득하다.

다만 아깝기는 세상에 이름난 사람은 한번 나기 매양 어렵도다.

수백년을 걸려서야 겨우 한번 보게되네.

그를 보고도 성취시키지 못하니 태평의 다스림을 어느 때에나 보랴,

나의 난 것이 무슨 다행으로 그대와 동시였네,

서한시대(西漢時代)의 문장이요,송(宋)나라 원풍(元豊), 희녕(熙寧)시대의 인물이었네,

정치의 잘못됨을 한 숨 쉬고 통곡(痛哭)하며,

옳은 일이라면 용감(勇敢)히 하였도다.

강관의 무리들이 옆에서 이를 갈며 엿보는 줄 어찌 알았으랴,

큰 칼 쓴 죄인으로 문득 사형장(死刑場)으로 가란 말가,

세상 만사에 없는 일이 없구나,

동해 바다가 끝없이 너르네,

지금은 세상이 바로 되어가 혹한 법도 풀어져 선하고 악한 것이 구별이 되네,

어찌 무오년의 원통(寃痛)함은 아직도 신설(伸雪)하지 못하는고,

춘추의 필법에는 내 임금의 허물을 위(諱)하는 예가 있어

정공(定公).애공(哀公)의 기록에는 숨긴 말이 많다하나 이렇게 춘추(春秋)를 지은 성인(聖人)은 하늘과도 같아서 후세 사람 따를 바 못되고,

붓을 잡아 들은대로 쓰는 것은 사가(史家)의 상례이다.

들은바 가 바르고 틀림이 있다해도 그것은 사람의 사견(私見)이다.

그것을 정리 편찬하는 데는 실록청(實錄廳)이 있으니

허위로 된 것이면 깎으면 그만인데

다만 뱃속의 칼이 터럭속의 흠터를 찾아냈네.

위(魏)나라 사람들이 국악(國惡)을 써서 길거리 에 보인 것과는 비할 것도 아니로다.

벼슬 자리에서 직무(職務)를 행하지 못했다면 그 죄는 매를 치면 될 것이요

,현능한 인재에는 특별히 용서하고 감형하는 옛 법도 있는 바다.

이런 말씀 아뢰어 임금의 의혹을 풀어드릴이 없구나.

세월도 10년을 넘게되니 식자들의 가슴에 영원한 슬픔이여,

파타성(跛타城) 성동의 낮은 언덕 초라하여 시체 감출곳 되지 못하네

사랑하는 자질들이 좋은 땅 가려 이장 (移葬)하려 하도다.

그대는 지금 하늘 위에서 굽어보면 먼지만 자욱하리.

솔개나 굼벵이를 택하지 않거든 하물며 이땅저땅 상관하랴마는

인간에서 구구하게 성묘 (省墓)하고 제사(祭祀)드리기 편함을 취함이네.

처량하다 목천현(木川縣)에 구불 구불한 산기슭,

후일에 도지(圖誌)를 편찬(編纂)할 때 이 무덤 기록하여 빼지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