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문학기행으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송강정의 내역을 알 수있는 시 한수 소개 합니다.
원래 송강정은 선조 때 도문사라는 중이 송강천 구릉에 조촐한 정자를 지었고 그 이름을 죽록정이라 하였다. 그런데 송강이 1585년에 창평으로 내려와 다시 고쳐 지어 이름을 송강정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정자는 송강이 죽은 후에는 폐허가 되었는데 송강의 6대손 죽계공이 1649년에 새로 중건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계공은 우계 성혼의 유고에서 이곳에 송강정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송강의 시와 우계의 시를 참고하여 송강정을 중건하였다 한다.
나는 먼저 현판에 걸린 < 증도문사> 시부터 감상한다.
도문사에게 지어주다 ( 贈道文師 )
조그맣게 죽록정 정자를 새로 짓고서
송강이라 맑은 물에 내 갓 끈을 씻는다네.
티끝 세상의 거마일랑 모두 물리치고서
강산의 풍월을 너와 함께 평하리라.
贈道文師
小築新營竹綠亭 松江水潔濯吾纓
世間車馬都揮絶 山月江風與爾評
송강은 새로 죽록정을 고쳐 짓고 송강의 맑은 물에 갓끈을 씻으며 세간의 거마를 모두 물리치고 오직 자연과 더불어 살아 가겠다는 시를 짓는다. 그런데 ‘송강의 맑은 물에 내 갓 끈을 씻는다.’는 시구절이 눈에 익다. 이 구절은 굴원의 <초사>중 ‘어부사’에서 나온 말이다.
일찍이 중국초나라의 재상 굴원(屈原)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강에 빠져 자살하였는데, 그는 죽기 전에 ‘어부사(漁父辭)’란 비장한 노래를 남긴다. 그는 강가에서 한 어부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 데 강가를 초췌한 모습으로 거니는 굴원을 보고 어부가 ‘무슨 일인가’하고 묻자 굴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온 세상 모두가 흐려져 있는데/나 혼자만이 맑고 깨끗했으며/뭇 사람들 모두가 취해 있는데/나 혼자만이 맑은 정신 깨어 있어서/그만 이렇게 추방당한 것이니라.”
그리고 굴원이 결연히 죽을 결심을 말하자 어부는 빙그레 웃으며 돛대를 올리고 사라지면서 이 말을 남긴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리라.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어부의 이 말은 세상이 맑을 때에는 갓끈을 씻어 입신양명에 힘쓸 수 있으나 세상이 혼탁할 때는 우선 자신의 발을 씻어 세속을 떠나라는 충고였던 것이다. 세상이 말세가 되면 그 속에 빠져 들지 말고 한 걸음 먼 발치에서 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송강은 증도문사라는 시에서 '송강의 물이 맑으니 내 갓끈을 씻는다'고 읊으면서 이제 세속의 일들은 모두 물리치고서 산에 있는 달과 강에 부는 바람을 벗 삼아 지내겠다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노라고 선언한다. 조정에서 밀려나서 멀리 창평까지 온 몸이 다시 입신양명을 꾀하는 갓끈을 씻는다는 포부를 읊은 것은 조금 이상하다. 그런데 이 구절을 역설적으로 해석하여 보니 말이 된다. 송강은 이 곳 창평에 귀양 아닌 귀양을 왔으나 나는 곧 ‘갓끈을 씻으리라. 나는 다시 조정에 들어가리라'. 번번히 낙향할 때 마다 나는 임금께서 다시 금방 부르셨다. 잠시간만 속세는 잊고 자연과 벗하면서 재충전을 하자'. 이런 심사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이 시가 송강의 낙향 초기(1585-1586년)에 임금의 총애를 믿고 있고 자신만만한 시절에 써진 시라고 생각하여 본다.
(송강정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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