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루시아 G 팔라레스-버크 지음
곽차섭 옮김 푸른역사 | 605쪽 | 2만5000원
-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역사가인 잭 구디에게,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마르크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주장한 정태적(靜態的) 동양 사회라는 관념이 사실은 서양이 만들어 낸 신화일 뿐이라는 점을 말하려는 건가요?” 구디는 “그렇다”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서양의 발전이 그리스에서 시작해서 단절 없이 일직선상으로 계속됐다는 견해는 서구의 민속적 지식에 불과합니다…인도와 중국의 인구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은 실패의 지표가 아니라, 그곳의 경제가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는 겁니다.”
성공적인 인터뷰어는, 그렇게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결코 듣지 못했을 심연 속의 핵심을 끄집어낸다. 브라질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치밀한 준비와 연구 끝에 20세기 후반 이후 ‘권위적 담론’으로 세계 역사학을 이끌어 온 9명의 지식인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저작 행간에 감춰진 의미와 내밀한 고백을 듣는다. 저자의 남편인 유럽 문화사 전공자 피터 버크도 인터뷰 대상자 중 한 명이 된다.
잭 구디는 “문자가 곧 진보는 아니다”며 현대에서도 구전적(口傳的) 지식이 가진 의미가 재평가돼야 한다고 말한다. 16세기 프랑스사 전공자인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는 “문화 혼합에 대한 연구들은 우리에게 민족주의와 인종이라는 불순한 제단들을 멀리하라고 경고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대답들과 그것을 유도하는 질문들은, 이 책 전체가 비교사(比較史)와 문화 혼합,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미시사(微視史)와 인류학, 미셸 푸코도 주요 논점이 된다.
역사가 개인의 교육 환경과 지적(知的) 경로가 현재에 미친 영향을 드러낸 부분도 흥미롭다. 뉴욕 타임스 기자 출신의 역사가 로버트 단턴은 학자가 된 뒤에 자신도 모르게 경찰서 기록보관소를 들락거리다가 중요한 자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단턴은 “모든 역사가가 한 번쯤은 신문사 경찰 기자가 돼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역사가가 아무리 담론을 얘기한다고 해도, 역사 연구의 기초는 어디까지나 충실한 사전조사와 정확성에 대한 존중에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근대 초 유럽 민중문화사 전공자인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어린 시절 소설가인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역사와 픽션은 서로에게 도전하고 반응하면서 상대방으로부터 배운다”고 말한다.
다양한 대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를 보고 해석하는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하지만 주석이 너무나 인색한 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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