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지않은 현실정치 참여는 자기파멸, 문학에 대한 배반”
“동서양 위인전과 한국 전래동화 등 아동물 50권 계획”
입력 : 2007.01.29 17:19 / 수정 : 2007.01.29 17:25
- “세계화 시대라 해도 민족이라는 울타리를 허물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민족은 낡은 개념이 아닙니다. 지켜야 할 가치까지 폐기해야 한다는 것은 신사대주의입니다.”
“작가는 피해를 보더라도 옳고 정의로운 것에 대해 발언을 해야 겠죠. 그렇지 않는다면 대중의 의식을 흐리게 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합니다. 작가가 현실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자유지만 오류를 범하는 정치세력에 들어가 부화뇌동하는 것은 자기 파멸의 길인 동시에 문학에 대한 배반입니다.”
- ▲ 29일 오전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조정래의 '아리랑' 100쇄 출간 기념 기자회견에서 작가 조정래씨가 회견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
- 중진 소설가 조정래(64)씨가 최근 ’민족’을 빼는 쪽으로 명칭을 변경하려 했으나 회원들의 반대로 이를 보류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현실정치 참여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일부 작가들에게 충고를 했다.
해냄 출판사가 일제강점 하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그린 대하소설 ’아리랑’(전 12권)의 100쇄(제1권 기준) 돌파를 맞아 29일 낮 조선호텔에서 마련한 기자간담회서다.
조씨는 “나는 인간에 대한 애정, 모국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에 천착하려 했다”며 “요즘, 세계화 시대에 민족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것인양 거론되는데 그것은 가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열었다.
조씨는 “민족과 국가가 존립돼 인류 보편적 문제를 그 안에 담아낼 때 인류의 평화가 지속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여기서 민족이란 배타적,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건설적, 개방적 개념이다.
조씨는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남북이 통일하려는 이유도 민족이라는 이유에서다”라며 “민족 문제를 폐기처분하는 시기는 통일 이후여도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문열씨가 신작 ’호모 엑세쿠탄스’에 정치적 견해를 반영하고 황석영씨가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과 관련 “작가와 지식인은 끝없이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감시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원칙론을 들고 나왔다.
무엇보다도 사회의 산소 역할을 해야 할 작가가 현실정치에 대해 발언을 한다면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어야 하며, 그 내용이 옳고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씨는 한발 나아가 “한국정치가 왜곡되는 것은 정치인들의 사회적 책무가 덜하고 소속 당을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가 횡행한다는데 있다”고 지적한 뒤 “타협이야말로 민주정치의 꽃”이라며 타협의 정치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 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정직성을 거론한뒤 “중요한 것은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시대 변화로 젊은 세대가 이제 대하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의견에 대해 “역사를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하소설로 쓰는데 어떻게 독자들이 읽지 않겠느냐는 확신이 있었다”면서 “팔리고 안팔리고는 차후 문제로 작가가 써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쓰면 된다”고 단언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진지한 문제를 다룬 글을 읽고 싶어하는 독자 40만-50만명이 항상 대기상태”라면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열정을 바쳐 좋을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이지 풍조나 유행이 아니다”라고 거듭 말했다.
대하소설을 쓰는 것이 치가 떨릴 정도로 지긋지긋하고 힘들었다는 조씨는 “첫 장을 쓸 때까지 20-30장의 파지가 나오는데 그 한 장을 쓰는데 2-3일이 걸린다”며 “내가 이걸 언제 다 쓸까 하는 생각에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으로 혼자 걸어다니는 것 같은, 그 막막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조씨는 “내 나이 쉰만 됐어도 대하소설 두 편은 쓰겠지만 일 욕심도 탐욕이라 ’한강’을 쓴뒤 대하소설은 쓰지 않기로 했다”며 “작가들이 독자를 찾아다니려 하지 말고 작가들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흡인력을 갖고 쓰면 그 영혼이 전달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씨는 이어 후배 작가들에게도 3인칭 소설부터 연습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소설의 위기를 제공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우리 소설문학의 왜소화라는 인식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이 1인층 화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많이 쓰는데 그래 가지고는 중단편 밖에 못써요. 장편을 쓸 수 없습니다. 1인칭 소설은 화자를 통해야만 다른 인물들이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삶 자체는 역사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역사처럼 다채롭고 총체적입니다.”
조씨는 최근 일본문학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에 대해 “그것은 소재가 다르니까 호기심 때문에 생긴 일시적 현상이지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씨는 “10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휴대전화 등 문명의 이기에 지겨워할 것인데, 작가들이 와신상담해야만 그때 길이 열릴 것”이라며 “문학의 생명은 우리 인간이 언어를 쓰는 한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부활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씨는 앞으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생까지를 대상으로 신채호, 한용운, 안중근 등 국내 근현대사 인물 15명과 마더 테레사, 퀴리 부인 등 인류 문화에 기여한 해외 인물 15명 등 총 30명의 위인전을 권당 400쪽으로 펴낼 계획이다. 여기에 우리 전래동화 20권을 보태 총 50권의 아동물을 낼 생각이다.
그는 ’아리랑’ 100쇄를 맞아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이 대중에게 올바르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내가 옳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면서 “작가들이 비판하고 저항하는 작가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문학의 존립 가치는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엿다.
국내 출판 사상 100쇄를 돌파한 순수 한국문학 작품으로는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이상 이청준), ’광장’(최인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등이 있다.
기자간담회를 가진 이날은 40년 전인 1967년 1월29일 조씨가 같은 조선호텔에서 일등병 군인의 신분으로 시인인 아내 김초혜씨와 결혼식을 올린 날이기도 하다.
그는 9월 일반인에게 개방할 전남 보성군의 ’태백산맥 문학관’에 마련되는 집필실에 한 달에 1주일 가량씩 머무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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