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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poet 한 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김창열 이우환 1970-80’전, 점의 미학으로 본 한국회화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1913~74), 이우환(1929~), 김창열(1936~).

이 세 작가는 고향도 연배도 활동지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1970년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들은 모두 해외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을 그리워 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동양적 정서가 가득 풍기는 추상회화를 그렸다는 것. 엄밀히 말해 물방울 시리즈로 유명한 김창열의 경우 추상회화로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의 물방울 역시 동양사상의 근원인 점으로 환원해 생각해볼 수 있다.

세 작가의 대표작을 이달 30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김환기 김창열 이우환 1970-80’전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70년 한국미술대상전 대상 수상작인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99년 환기미술관과 갤러리 현대가 개최한 ‘김환기 25주년’ 이후 7년 만에 공개된다. 전시 작품들은 모두 70년부터 80년 사이 제작된 것으로 김환기의 파란색 점 연작과 말년에 제작한 회색빛 점, 노란빛 점 연작 등 14점의 점 연작이 선보인다. 또 이우환의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 연작 10점, 김창열의 물방울 연작 9점도 전시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의 교과서적인 전시라고 할 만하다. 기획을 맡은 김용대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을 연대기적 순서가 아니라 점이라는 공통적인 조형요소에 근거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모네의 그림도, 쇠라의 그림도, 소정(변관식)의 그림도 모두 점으로 구성돼 있다”며 “전시 기획은 현대 디지털 문명의 기본 단위 또한 점, 도트(dot)라는 데 착안했다”고 말했다.

점은 회화의 기본 구성 요소이면서 동양사상의 기반이기도 하다. 세 사람이 그 점을 사용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64년 뉴욕에 진출한 이후 점, 선, 면으로 이뤄진 순수추상회화를 발표한 김환기의 점은 김전관장에 따르면 ‘문학적’이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한 구절을 그림 제목으로 삼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도 김환기의 서정은 확인된다. 김환기는 고국을 그리워하며 거대한 크기의 면에 선을 그리고 푸른 점을 찍어나갔다.

그에 비해 이우환은 철학적이고, 김창열은 심리적·미학적이다. 그림을 그리다 일본에서 철학을 공부한 이우환의 그림은 점에서 시작해 희미해지는 점과 선이 반복된다. 반복적으로 점을 찍고, 혹은 점을 길게 내려긋는 과정을 통해 ‘반복과 소멸’이라는 동양미학의 속성을 제시한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극사실주의 회화와 닮아있지만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착시 현상을 통해 인간의 시각적 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화면 전체에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끝없는 확산과 덧없음의 미학을 설파한다. 세 작가에게 점을 그리는 것은 곧 명상이며 마음을 비우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02)734-6111

 

 

  중앙일보] '저녁에'- 김광섭(1905~77)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제 별은 없다. 우주 저쪽에서 수백 광년을 달려온 별빛은 도시의 천장을 뚫지 못한다. 매일 밤, 도시의 강력한 불빛이 어둠을 추방하는 것이다. 도시는 24시간 대낮이다. 별은 없고 '스타'만 있다. 별빛마을 아파트만 있다. 사람들은 밤하늘을 잊었다. 잃어버렸다. 도시는 우주의 미아다. 매일 밤, 멋모르고 달려온 별빛들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대낮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어둠을 어둡게 해야 한다. 그래야 '별 하나 나 하나'가 다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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