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이야기

김세곤의 독일 슈테델 미술관 기행 [27회]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8옥 제3 구렁 ‘성직(聖職)매매자 - 세 교황’

김세곤 2025. 2. 11. 07:13
김세곤의 독일 슈테델 미술관 기행 [27회]
  •  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5.02.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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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8옥 제3 구렁 ‘성직(聖職)매매자 - 세 교황’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8옥’ 제3 구렁(제 19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 마술사 시몬이여! 불쌍한 추종자들이여!
너희들은 당연히 선의 신부가 되어야 할
하느님의 물건들을 탐욕스러운 본성을 이기지 못하여
금과 은으로 팔아먹고 말았다.

귀스타브 도레, 지옥편 제19곡, 1861년, 파리 국립도서관

이제 너희들이 갇혀있는 이 제3 구렁에서
너희들에게 나팔이 울려야 마땅하리라.(중세 법정에서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나팔을 불어서 사람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은 베드로와 요한으로 부터 성령을 전하는 역할을 돈으로 사려 했다. 이러자 베드로가 시몬을 꾸짖었다.
“당신은 하느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작정이요? 당신은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요.”
「사도행전」 제8장 제4절-제24절에 나온다.

제3 구렁을 살펴보자.
현세에서 영적인 가치를 이용하여 물질을 추구했던 성직 매매자들은 발과 정강이가 거꾸로 솟아 있었고, 몸과 얼굴은 구멍 안쪽에 거꾸로 박혀있었다.
그들의 양 발바닥에는 불이 붙었는데 발꿈치에서 발끝까지 타오르고 있었다.

한편 단테는 다른 죄인들보다 세차게 떠는 자를 발견하고, 베르길리우스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었다. 베르길리우스는 더 낮은 둔덕으로 내려가면 그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단테를 둔덕까지 인도하였다.

단테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말뚝처럼 곤두박질한 사악한 망령이여! 당신은 누구인가요?”

그는 소리높여 외쳤다.
“너 벌써 거기 와 있느냐? 보니파키우스? 예언 기록이 나를 몇 년 속였구나. 그렇게 빨리 탐욕을 채웠느냐? 탐욕에 눈이 멀어 아름다운 신부도 속였느냐? 게다가 나중에 성직을 매매까지 했느냐? ”

교황권 강화를 꾀한 보니파키우스 8세(1235~1303, 재위 1294~1303)는 단테(1265∽1321)와 인연이 깊다. 1301년에 단테는 피렌체를 교황령으로 삼으려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를 설득하기 위해 로마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피렌체로 돌아오던 중에 흑당이 정권을 잡는 정변이 일어나, 백당인 그는 1302년부터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되어 19년간 방랑 생활을 하였고, 이 기간중에 『신곡』을 집필하였다.

이러자 단테는 그에게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답변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가 전에는 커다란 망토(교황의 법의)를 입었음을 알아주시오. 사실 난 암곰의 아들이었소. 새끼 곰들이 잘 자라기를 너무나 바랐기에 세상에서는 돈을 긁어모아 주머니에 넣었고, 이곳에서는 나 자신을 주머니에 처박았소.”

그는 교황 니콜라우스 3세(1210-1280 : 재위 1277-1280)로 곰을 문장으로 하는 아탈리아 유력 가문인 오르시니 가문 출신이었다. 오르시니 가문은 교황 스테파노 2세(752-757)와 교황 바오로 1세(757-767), 교황 첼레스티노 3세(1191-1198) 등의 교황을 배출하였다.

그런데 니콜라우스 3세는 족벌주의에 사로잡혀 가장 가까운 친척 세 명을 추기경에 서임했고, 그 밖의 친족들에게도 중요한 자리를 주었다.

니콜라우스 3세의 말은 이어진다.
“좀 전에 당신이 그 놈인줄 알고 내가 갑작스럽게 소리를 쳤는데
그리고 그 놈 다음에 그 놈과 날 능가할 정도로
법도 모르고 신성도 인성도 전혀 없는 목자가 서쪽에서 올 것이요.”

여기서 ‘그 놈은’ 보니파키우스 8세이고, ‘그 놈 다음에 그 놈’은 클레멘스 5세(1264~1314 재위 1305∼1314)이다.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에 의해 교황이 되었고 1309년에 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겼다.
이후 1377년까지 약 70년간 ‘아비뇽 유수(幽囚)’가 이루어졌는데, 아비뇽의 교황들은 프랑스 왕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 뒤 로마와 아비뇽에 두 명의 교황이 분립하는 교회의 대분열(1378~1417)로 이어지면서 교황권은 더욱 약해졌다.

한편 단테는 이 말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금 말해보시오. 우리 하느님께서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시기 전에 돈을 얼마라도 요구하셨습니까?
그 분은 ‘나를 따르라’라고 요구하지도 않으셨지요?

버림받은 사악한 영혼(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를 말함)을 마티아가 채웠을 때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은 은이나 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제1장 제26절-제27절에 나온다.)

당신은 온당한 벌을 받고 있으니 거기 그대로 있으시오. 그리고 샤를을 거부하며 불의를 저질러 얻은 사악한 돈이나 잘 간직하시오.”

(니콜라우스 3세는 나폴리와 시칠리의 왕 샤를을 치기 위해 그리스 황제 팔레올로구스와 검은 거래를 했다.)

단테가 말하는 동안 그는 두 발바닥을 사납게 흔들고 있었다.
이윽고 단테 일행은 다음 구렁을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