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45) 조선정판사 위폐사건(朝鮮精版社僞幣事件) (1)

김세곤 2024. 8. 20. 08:31

<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45) 조선정판사 위폐사건

(朝鮮精版社僞幣事件) (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대한제국 망국사저자 )

 

1946316일에 위조지폐단이 검거되었다. 318일자 서울신문 기사를 읽어보자

 

통화팽창의 인플레를 더욱 악화시키는 위조지폐단 일당이 서울 마포서에 검거되었다. 시내 마포서에서는 위조지폐단 일당의 보고를 탐지하고서 약 20일 전부터 극비밀리에 맹활동을 계속 중이던 바, 16일 밤 도 경찰부의 협력을 얻어 한강통 3정목 151번지에 거주하는 위조지폐단의 수괴 김재기(41)를 비롯하여 김병희(28), 최인집, 김계길등 4명을 체포하고 안암정 100번지의 6호에 있는 김계길의 별가에서 석판으로 만든 위조지폐기, 약품 다수, 현금 천여 원을 압수하였는데 이들의 자백에 의하면 수개월 전부터 지폐 120여만원을 인쇄하여 유흥에 소비한 것이 판명되었다. - 서울 마포 경찰서 위조지폐단 검거-

(김기협 지음, 해방일기 3, 너머북스, 2012, p 268-269)

 

그런데 위조지폐단이 발행한 위조지폐는 상당수가 시중에 나돌았고 상인들이 백원권 받기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일어났으며 별의별 유언낭설이 나돌았다.

 

1946413일 자 조선일보 기사를 읽어보자.

 

조선은행권 (1)호에서 (5)호까지의 백원권 지폐는 쓰느니 못쓰느니, 받는니 안 받느니 하고 항간에는 별의별 유언낭설이 떠돌고 있어 큰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동시에 경제계에 적지 않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 12일 조선은행 발행과장 오정환에게 그 진상과 대책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요사이 위조지폐가 돌아다닌다는 바람에 백원권 위조지폐와 비슷하다는 소위 조선은행권 기호 (1)(2) 두 종류 지폐를 잘 안 받는다는 말을 듣고 우리 은행에서는 의심을 품고 이런 지폐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한하여는 감정하고 바꾸어 주었다.

 

이 문제가 이렇게 크게 된 원인의 하나는 일부 은행가운데서 무조건하고 백원권 지폐는 에금도 안 받고 바꾸어 주지도 않는다는 점도 큽니다.

적어도 은행 출납계에 있는 사람으로 위조인지 아닌지를 구분 못할 정도의 교묘한 위조지폐는 아직 없습니다. 문제의 기호(1)(2)는 일본이 패전 이후 미국 진주전에 찍어낸 것인 만큼 그 기술에 있어 원지(原紙) 또는 인쇄에 있어 똑똑치 못한 점도 있으나 (3) (4) (5)는 미군 진주 이후 인쇄된 것이라 불량한 지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여하간 위조지폐의 기술이 해방 전보다 교묘하게 된 것도 사실이나 일반 시민은 유언비어에 속지 말고 종전과 같이 사용하기를 바라며 의심되는 것은 언제나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지폐는 책임지고 본점은 물론 지방 지점에서도 교환하여 들릴 터이니 안심하기 바라며 은행 당국을 신뢰하여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조선은행 발행과장, 위조 지폐 진상과 대책에 대한 언급-

(김기협, 위 책, p 352-353)

 

이처럼 1946년은 위조지폐 유통으로 경제가 몸살을 앓았고 상인들은 백원권 받기를 기피했다.

 

한편 필자는 해방 이후 전남 여수에서 농기계상회(상호 호남기계상회)를 한 선친(1913-1988)의 유품 중에 해방 당시의 지폐를 30여장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보니 한국은행 전신(前身)인 조선은행 발행 백원 권이 여러장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장은 위조지폐였다. 위조라고 빨간 도장이 두 개나 찍힌 위조지폐에 부친께서는 ‘1947.10.30.’이라고 날자를 적어 놓았다. 위조지폐를 보니 노인 사진이 진짜 지폐의 노인 사진에 비하여 상당히 조잡하다. 또한 위조지폐는 1947년에도 지방인 여수에 유통되었으니 위조지폐 파동이 상당히 오래가고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