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과 무오사화

무오사화와 사관 김일손 - 1회 사초로 인한 사화, 무오사화

김세곤 2024. 1. 10. 06:35

무오사화와 사관 김일손 - 1회 사초로 인한 사화,  무오사화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1498(연산군 4) 7월 조선 시대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다. 사화(士禍)선비()가 화()를 입는다.’는 뜻이지만, 무오사화는 사관(史官) 김일손(金馹孫14641498)이 쓴 사초(史草)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에 사초로 인한 화’, 戊午史禍(무오사화)라고도 불린다. (조선 시대에는 4대 사화가 일어났다. 1498(연산군 4) 무오사화, 1504(연산군 10) 갑자사화, 1519(중종 14) 기묘사화, 1545(명종 즉위년) 을사사화이다.)

 

그러면 무오사화 개요부터 알아보자. 먼저 이기백 교수(19242004)한국사신론이다.

 

첫 사화는 연산군 4(1498)에 있은 무오사화(戊午史禍)였다. 이를 특히 사화(史禍)라고 적는 것은 그것이 사관(史官)들이 적어 둔 초벌원고인 사초(史草)에 기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은 사관으로 있으면서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올렸다. 김종직이 단종을 항우에게 죽음을 당한 의제에 비기어 그 죽음을 슬퍼하고 세조의 찬탈을 비난한 것이 조의제문이었다.

연산군 초에 성종실록의 편찬을 위한 실록청을 구성하여 사국(史局)을 열었을 때 위의 사초가 발견되자, 훈구세력은 연산군을 충동하여 김일손 등의 사림학자를 혹은 죽이고 혹은 귀양 보내었다. 이로 인하여 사림들의 세력은 크게 꺾이게 되었다. ” (p 227-228)

 

다음은 민음사가 발간한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책이다.

 

무오사화는 김일손의 사초 문제에서 시작해 김종직 문인을 붕당으로 규정하고 일부 대간들을 능상의 명목으로 단죄한 사건이다.” (p 48)

세번째는 김돈이 지은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4,조선전기이다.

 

무오사화는 연산군 4(1498)에 이극돈 · 유자광등이 성종실록편찬을 위해 김일손이 그의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사초로 제출한 것을 구실로 발생했다.” (p 156-157)

 

이 책들을 살펴보면 무오사화의 키워드는 연산군, 성종실록 편찬, 김일손, 김종직의 조의제문, 이극돈, 유자광이다.

 

무오사화는 1498(연산군 4) 71일부터 727일까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마무리되었다. 연산군이 김일손을 친국한 712일부터 따지면 15일 만에 종결되었는데 사화의 시작도 비밀스럽고 돌발적이었다.

 

그러면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자. 먼저 1498(연산군 4) 71일의 연산군일기이다.

 

파평부원군 윤필상, 선성부원군 노사신, 우의정 한치형, 무령군 유자광이 차비문(差備門)에 나아가서 비사(秘事)를 아뢰기를 청하고,

도승지 신수근으로 출납을 관장하게 하니 사관(史官)도 참예하지를 못했다. (후략)”

 

다음은 7121번째 기사이다.

 

전교하기를, "별감(別監) 세 사람에게 상등의 말을 주어서 세 곳으로 나누어 보내어 기다리다가, 잡아오는 사람이 바라보이거든 차례차례로 달려와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이어서 7122번째 기사이다.

 

또 전교하기를,

 

겸사복장(兼司僕將)에게 명해서 겸사복(兼司僕) 등을 거느리고 건양문(建陽門) 밖으로 나가, 연영문(延英門) 빈청(賓廳) 등처를 에워싸고 파수를 보면서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도록 하라.’하였다. 의금부 낭청(郞廳) 홍사호가 김일손을 끌고 들어오자, 의금부에 명하여 허반을 잡아오게 하였다. ... 상이 수문당(修文堂 지금의 희정당) 앞문에 납시니, 윤필상· 노사신·한치형·유자광·신수근과 주서(注書) 이희순이 입시하였다. 명하여 일손을 좌전(座前)으로 나오게 하고, 전교하기를,

"네가 성종실록에 세조조의 일을 기록했다는데, 바른 대로 말하라." 하니, 김일손이 아뢰기를,

"신이 어찌 감히 숨기오리까. 신이 듣자오니 권귀인(權貴人)은 바로 덕종(德宗)의 후궁(後宮)이온데, 세조께서 일찍이 부르셨는데도 권씨가 분부를 받들지 아니했다.’ 하옵기로, 신은 이 사실을 썼습니다."

하였다. (후략)”

 

마지막으로 연산군일기7271번째 기사 제목은 김일손 등을 벤 것을 종묘 사직에 고유하고, 백관의 하례를 받고 중외에 사령(赦令)을 반포하다.” 이다.

 

그러면 다음 회부터 무오사화를 일자별로 자세히 살펴보자.